<"손에 못쥐면 이익 아냐" 대기업 배당판도 '흔들'>

입력 2013-03-31 06:00
올해부터 주주배당 급감…당국 '일관된 배당정책' 지도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들에 중장기적인일관성을 고려한 배당정책을 수립하라고 '사전단속'에 나선 것은 올해부터 개정상법이 적용돼 대기업과 주요 금융기관의 배당 판도가 바뀌게 됐기 때문이다.



수중에 들어오지 않은 이익(미실현이익)은 배당액을 계산할 때 빼야 하기 때문에 주식을 사고파는 데 제약이 있는 대기업이나 파생상품 자산이 많은 금융기관은배당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연말까지 미실현이익이 얼마나 될지 추정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자칫 의도치 않게 위법 배당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주주배당 급감…대기업·대형은행 '직격탄'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7일 시행된 개정상법이 올해 4월부터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보험사나 은행 등 금융회사에 전면 적용된다.



개정 상법은 배당 가능 이익을 계산할 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미실현이익'은빼도록 했다.



미실현이익이란 회사가 가진 주식, 채권, 파생상품의 가격이 올라 장부상 이익이 생겼지만, 팔지 않아서 실제 수중에 들어오진 않은 이익을 의미한다.



내가 가진 주식이 1만원 올랐어도 팔지 않으면 계좌 상에만 1만원의 이익금이찍힐 뿐 손에 쥔 돈은 없는 것과 같은 원리다.



기업은 그동안 미실현이익에서 반대 개념인 미실현손실을 뺀 금액을 배당이익에서 공제했다. 그러나 지난해 상법이 개정되면서 미실현이익이 고스란히 배당이익에서 빠지게 됐다.



주가 상승으로 고배당이 가능했던 대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032830]의 지난해 말(FY2012 3분기) 기타포괄손익은 12조2천억원으로FY2011이 끝난 같은 해 3월 말의 9조7천억원보다 25.8% 늘었다.



기타포괄손익은 기업이 일정기간 동안 소유주와의 자본거래를 제외한 모든 거래에서 얻은 자본의 변동액으로, 미실현이익이 여기에 속한다.



삼성생명의 기타포괄손익이 많이 늘어난 데는 이 회사가 보유한 삼성전자[005930] 등의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3월 30일 127만5천원에서 12월 28일 152만2천원으로 19.4% 올랐다.



이런 점을 반영할 때 삼성생명은 오는 5월께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고배당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FY2011 삼성생명의 배당성향은 전년보다 두 배 오른 41.54%였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이런 이유로 얻은 이익은 배당이익에 넣을 수 없게 된다. 자연스럽게 배당액은 줄어들게 된다.



가격이 오른 주식은 시장에 팔아 실질적인 이익으로 만들면 배당을 늘릴 수 있지만, 순환출자 고리에 맞물려 있는 삼성그룹의 특성상 이런 방법도 여의치 않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연결된 순환출자 구조로 그룹의 핵심 지배고리를 구성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7.21%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삼성생명이 배당을 늘리고자 삼성전자의 주식을 판다면 그룹 전체 순환출자의 고리가 깨질 수 있다.



태광그룹 계열의 흥국생명이나 한화그룹 계열의 한화생명[088350] 등도 마찬가지다.



개정상법은 파생상품 거래가 많은 금융기관이나 대형 조선사·건설사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파생상품 거래로 얻은 이익도 미실현이익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말 신한은행이 가진 파생상품자산은 현금·예치금의 19.8% 수준인 1조8천억원에 달한다. 여기서 얻은 이익이 배당 가능 이익을 계산할 때 통째로빠지게 되는 셈이다.



◇당국, 금융회사 배당 '연착륙' 유도 당국이 금융회사들에 공문을 보낸 것도 개정상법으로 배당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사전에 적정 규모의 배당을 시행하라는 취지에서다.



전년까지 고배당을 해놓고 올해 갑자기 배당액이 급감하면 예측가능성이 줄어들어 주주권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금융회사의 회계연도가 다른 기업처럼 연말로 조정되기 때문에 배당이 더욱 줄어들 수 있다. 2013년에 한해 회계연도가 1년에서 9개월로 짧아지게 된다.



지난해 4월 개정상법이 시행될 당시 금감원은 지주회사와 고배당 성향 회사 등에 "(개정상법이) 배당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배당정책의 변경 여부를 사전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들이 FY2012에 지나친 고배당을 삼가는 대신 올해 배당액과적정히 배분해 배당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그러나 당장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을 줄여야 하는 업계는 불만을 토로한다.



미실현손실은 그대로 손실로 인정하면서 미실현이익은 이익으로 보지 않는 법취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환율·주가가 어떻게 변동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실현이익 규모를 사전에 추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자칫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미실현이익을 잘못 계산해 위법배당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소관부처인 법무부는 지금으로선 재개정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당국도 개정상법의 긍정적인 면에 주목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배당 가능 이익을 계산할 때 미실현이익을 제외함으로써 선택적으로 자산·부채 상계한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간 배당의 형평성을 유지할 수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배당으로 줄임으로써 내부유보를 많이 쌓아 건전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된 점도바람직한 측면으로 꼽았다.



zheng@yna.co.kr eun@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