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잃은 슬픔부터 환자들 죽음 고통까지…"BTS 노래로 극복했다"
50대 '아미 엄마'부터 칠레에서 온 원정팬들도…"산소호흡기 같아"
들뜬 마음에도 멤버들 사생활 보호 한뜻…공항 안나가고 숙소 '모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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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방탄소년단(BTS)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우리 곁에 다가왔어요."
BTS의 첫 아르헨티나 '완전체 공연'을 하루 앞둔 20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의 한 BTS 테마 카페에 모인 팬들의 이야기는 저마다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던 순간, BTS의 음악과 메시지가 이들에게 위로가 됐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아미(ARMY·BTS 팬덤) 엄마'로 알려진 파비올라(54·사무직)와 에스텔라(50·수학교사), 칠레에서 온 심장전문의 마리아(56), 엔지니어 실비아(가명, 40), 물리치료사 파울리나(36)를 이곳에서 만났다.
이들은 BTS의 음악을 통해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견디거나, 의료 현장에서 마주한 죽음의 무게를 이겨냈으며,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파비올라가 BTS를 처음 접한 것은 2023년 4월 19일이었다. 한국 아이돌의 사망 소식을 보던 중 알고리즘이 추천한 아미들의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고 한다. 영상에는 가정폭력과 자살 시도 등 힘든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 BTS의 노래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처럼 팬들의 사연을 먼저 접하면서 BTS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멤버들의 영상과 음악을 찾아보며 점차 빠져들었다고 파비올라는 전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갑자기 병을 앓게 되면서 가족과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곁을 지키던 그는 다른 한 손으로 BTS 영상을 재생했다. 아버지와 함께 영상을 보며 웃기도 했다.
파비올라는 당시를 떠올리며 BTS의 영상이 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동안 슬픔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에스텔라 역시 삶의 큰 상실을 겪은 뒤 BTS의 메시지에서 위안을 얻었다.
우연히 BTS 칠레 공연 영상을 보다가 무대 위에서 온 힘을 다해 공연을 마친 멤버들이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BTS의 메시지가 큰 위안이 됐다"며 "BTS는 내게 산소호흡기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칠레에서 온 마리아에게 BTS의 음악은 의료 현장에서 겪은 고통을 견디게 해준 힘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심장전문의로서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낼 때 BTS 노래의 가사가 큰 힘이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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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올라는 자신이 BTS를 통해 위안을 얻은 경험을 다른 팬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50대 나이에 '아미 엄마'라는 이름으로 소셜미디어 활동을 시작하자,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집단 따돌림 등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이 BTS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는 사연들이었다.
BTS의 음악은 이들에게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넘어 힘든 시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된 셈이다.
이들이 BTS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이번 아르헨티나 공연을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드러났다.
파비올라와 에스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세 차례 공연의 티켓을 모두 구매했다.
두 사람은 "BTS가 아르헨티나에 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세 차례 공연을 모두 보러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칠레에서 온 마리아와 실비아도 자국에서 열린 세 차례 공연을 모두 관람한 데 이어 아르헨티나 공연까지 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칠레 공연 티켓을 세 차례 모두 예매했지만, 공연이 무산될 뻔한 상황이 발생하자 아르헨티나 첫 공연 티켓까지 급하게 구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칠레에서 세 차례 공연을 모두 관람한 뒤 아르헨티나까지 오게 됐다며 큰소리로 웃었다.
파울리나도 칠레 공연을 한 번 관람했다. 제이홉의 솔로 활동을 계기로 팬이 됐고, 이후 BTS 전체를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이번에는 마리아, 실비아와 함께 아르헨티나를 찾았다.
칠레에서 온 세 사람은 공연장에서 BTS를 가까이 보기 위해 VIP석을 예매했다. 공연 당일에는 새벽 4시 30분께 호텔을 나서 공연장으로 향할 계획이라고 했다.

공연을 앞두고 들뜬 마음은 같았지만, 아르헨티나 팬들은 BTS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준비에도 공을 들였다. 멤버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팬들은 멤버들을 보기 위해 공항에 몰려가지 않았고, 숙소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 아티스트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과 별개로 사적인 공간과 일정을 지켜줘야 한다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칠레 공연 때 팬들이 보여준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의 BTS 입국 관련 보도도 제한적이었다. 멤버들이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는 소식과 일부 멤버가 같은 식당에서 식사했다는 소식, 리더 RM(김남준)이 아르헨티나식 소고기 스테이크 식당을 찾았다는 내용 등이 짧게 전해졌다.
팬들이 멤버들의 동선을 무분별하게 추적하거나 숙소 정보를 퍼뜨리는 대신 사생활을 지켜주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르헨티나 팬들의 활동은 공연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멤버 뷔(김태형)의 현지 팬클럽 'TAE CREW ARGENTINA'는 회원들의 기금을 모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징인 오벨리스크 앞 대형 스크린에 광고를 내걸었다. 시내 다른 세 곳에도 스크린 광고를 설치했고, 시내버스 두 개 노선의 차량 뒷면에도 광고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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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회원 발레리아(37·간호사)는 "우리는 BTS를 사랑하고, 특히 뷔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광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첫 완전체 공연을 앞둔 팬들의 준비는 무대 위에서 펼쳐질 공연을 기다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가족과의 마지막 시간을 견디게 해준 음악을 다시 듣기 위한 여정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지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칠레 공연이 혹시나 무산될까 봐 아르헨티나까지 국경을 넘은 팬들과 현지에서 광고 프로젝트를 준비한 팬들, 한복을 5주간 한땀 한땀 준비한 팬, 그리고 멤버들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행동한 팬들까지. 이들에게 BTS의 아르헨티나 공연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무대인 동시에 각자의 삶에서 음악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기회로 보였다.
sunniek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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