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튀르키예서 강하게 비판…이스라엘까지 연결돼 균형외교 위기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아제르바이잔 당국이 히잡을 쓴 여학생의 등교를 사실상 막는 복장 규정을 시행하면서 이례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BBC 방송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21일 승인된 규정은 공립학교에서 '교육의 세속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옷을 금지했다. 논쟁은 규정에 '히잡 금지'라는 말이 없는데도, 학교 현장에서는 히잡을 쓴 여학생이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불거졌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종교에 따라 히잡을 쓰는 것과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별개라며 항의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외곽의 한 학교 앞에는 "히잡은 누구의 교육도 방해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이 등장했다. 소셜미디어(SNS)엔 히잡을 쓴 여학생을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모습이 촬영된 영상들이 게시되고 있다.
규정이 시행된 12일부터 바쿠와 남부 마살르·잘릴라바드 등지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아제르바이잔 내무부는 이날 규정 시행을 방해하고 공공질서를 위반하려 한 37명을 구금했다고 밝혔다. 반대 의견을 엄격히 통제하는 이 나라에서 시위는 드문 일이다. BBC는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당국이 일부 SNS 접속을 차단했다고 전했다.
교문에서 시작된 갈등은 국경 밖으로도 번졌다.
아제르바이잔인은 튀르키예인과 언어가 가까운 튀르크계 민족이다. 튀르키예는 아제르바이잔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두 나라는 자신을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라고 부른다. 2020년 아르메니아와 벌인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의 중요한 군사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종교로 보면 이슬람 시아파가 다수다. 수니파 국가 튀르키예보다 시아파의 맹주 이란의 영향을 더 받는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이란의 종교적 영향력을 경계해 왔다.
이번 복장 규정에 대해 동맹인 튀르키예 측에서 종교적 세속주의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튀르키예 대통령의 수석 고문 옥타이 사랄은 히잡 착용을 막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규정을 되돌리라고 촉구했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집권당은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반발했다. 가까운 동맹이지만 종교적 세속주의에서 충돌한 것이다.
튀르키예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아제르바이잔 외교공관 앞에선 이슬람주의 운동단체들이 히잡 등교 제한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바쿠 주재 이란대사관은 히잡 등교 금지를 반대하는 시위에 이란 정부가 연루됐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그었다.
튀르키예와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긴장을 더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스라엘에 석유를 팔고 무기를 사들이지만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문제로 관계가 상당히 악화했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의 일부 시위대는 아제르바이잔의 복장 규정을 아제르바이잔과 이스라엘의 긴밀한 관계와 연결 짓기도 했다. 이 규정이 비(非) 이슬람화를 추구하는 이스라엘을 의식한 조치라는 것이다.
튀르키예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실리적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아제르바이잔의 외교 노선이 학생의 복장 규정으로 뜻하지 않은 도전을 받게 된 셈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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