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사받아 마땅한 판사들이 제재 대상 올라"…국제법 질서 위기 지적
ICC 재판관 출신 필라이 "박수 더 치면 트럼프와 상 나눠야" 농담

ADVERTISEMENT
(서울=연합뉴스) 곽민서 기자 =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나비 필라이(85)는 그간 공공연히 노벨평화상 수상 희망을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척점에 선 인물로 평가된다.
노벨위원회가 평생 국제법 수호에 헌신한 필라이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허물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메시지로도 읽힐 법한 대목이다.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언론 발표에서 "필라이는 우리 시대 국제법 원칙을 수호해온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라며 평화상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특히 "우리는 법적 체계와 정의에 대한 전 세계적 존중이 약화하고 (국제질서가) '힘의 정치'로 전환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며 '국제법의 위기'를 강조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노벨위원회는 이어 "질서와 혼돈의 경계선을 지키는 판사들은 찬사받아 마땅하지만, 오늘날 바로 그 판사들이 제재받으면서 그들이 속한 기구도 공격받고 있다"고 직접 언급했다.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과 검사 등 13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사실상 직격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1기 집권 당시부터 파리 기후변화협약과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하는 등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 왔다.
그는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유엔 산하 기구를 포함한 국제기구 수십 곳에서 탈퇴하는 한편, 베네수엘라 현직 대통령을 군사작전으로 체포하는 등 기존 국제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보를 보였다.
ICC에 대해서는 아예 "통제 불능의 불량 기관"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평화상은 '힘의 정치'보다 국제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힘을 실으며 전 세계에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필라이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 대상인 ICC 재판관을 지냈고, 현재도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활동하는 '현역' 국제 법률가라는 점은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노벨위원회는 "법치주의 없이 운영되는 세계는 불공정하고, 현명하지 못하며, 비인간적이다. 평화에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아카네 도모코 ICC 소장 역시 이날 성명에서 필라이의 평화상 수상을 두고 "국제법 질서와 법치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시기에 이러한 인정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나아가 필라이의 수상은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한 '강력한 질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필라이가 이끌었던 유엔 국제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판단했으나,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나란히 이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필라이는 이날 수상 발표 이후 유엔 조사위 활동을 돌아보며 "진실을 말하는 데 왜 용기가 필요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박에 굴하지 않았다는 일각의 찬사에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포럼 참석차 독일을 방문 중인 필라이는 동료들의 축하 박수를 받으며 "여러분이 만일 박수를 더 치면 내가 이 상을 트럼프와 나눠야 할 수도 있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mskwa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