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반그룹이 최근 한진칼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며 경영권을 흔들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370억 원어치 지분을 더 매입하기로 했다. 양측 간 지분 경쟁이 격화되는 모습이다. 호반이 경쟁 끝에 한진칼 최대 주주가 되더라도 자회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쥐려면 또 다른 문턱을 넘어야 한다. 다름 아닌 방산이다.
대한항공은 우리 군의 군용기와 무인기를 제조, 수리, 개량하는 방산업체다. 방산이 핵심인 항공 우주 부문에서 확보한 일감의 규모만 직전 공개 기준 약 2조 6,354억 원으로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방위사업법에 따르면 방산업체에 대한 경영권을 쥐려면 산업통상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 국방부가 회사의 지배구조 변화가 국가 안보에 지장을 준다고 판단한 경우 매수나 인수 합병 등 주요 의사결정을 제지할 수 있다는 법안도 발의되면서 호반이 대한항공마저 품으려면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해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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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우주 실적 '쑥'…수주 잔고 '착착'
대한항공의 지난 3분기 항공 우주 매출액은 약 2,5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68억 원)과 비교해 44.1% 늘었다. 영업이익도 2024년 손실에서 지난해 흑자 전환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전년 대비 수익성이 7배나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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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공개된 수주 잔고도 올 상반기로 군용기가 1조 8,187억 원, 무인기가 8,167억 원으로 합쳐서 2조 6,354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보다 11.5%나 증가한 것이다.
특히 대한항공이 지난해 8월 방위사업청과 체결한 블랙호크 헬기 성능 개량 계약은 8,302억 원 규모로 2031년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11월 미국 L3해리스와 맺은 항공 통제기 계약은 6,319억 원 규모로 2035년 종료된다. 길게는 10년 동안 소화할 수 있는 물량들로 오랜 기간 실적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적 반영이 본격화되고 있는 사업도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4월 부산 테크 센터에서 중고도 정찰용 무인 항공기(MUAV) 양산 1호기를 출고했다. 공군의 수락 시험을 거쳐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인도할 예정이다. 양산 사업 규모는 약 9,800억 원이다.
미국 안두릴과는 인공지능 기반의 무인기를 공동으로 연구 개발 중으로 면허 생산 분야에서도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잉과는 AH-64 아파치 헬기 구조물 제작 부문에서 손잡고 협업 중으로 미래 먹거리도 발굴한 상황이다. 여객, 항공과 함께 방산이 회사의 주력 사업으로 급부상 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으로 이번 경쟁에서 특히 주목받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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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설득 한세월...관련법만 수십 개
방위사업법 제35조에 따르면 방산업체의 매매나 인수 합병 등으로 경영 지배권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업체와 인수자는 미리 산업통상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산업부는 앞서 방위사업청장과 협의도 해야 한다. 호반이 지난달 요청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와는 별개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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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 여부를 정하는 기준은 시행령 제45조에 있다. 제45조에 따르면 본인과 이해관계자가 합쳐 방산업체 주식을 50% 넘게 보유하려면 산업 장관의 허가가 전제돼야 한다. 지분율이 50% 미만이라고 해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최대 주주가 돼 직접적으로 또는 관계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방산업체의 이사를 선임하는 등 경영을 좌우하면 허가 대상에 들어갈 수 있다.
호반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약 20%다. 한진칼은 방산업체인 대한항공의 최대 주주로 보통주 26.13%를 들고 있다. 정부를 중심으로 논란이 일 수 있는 시점은 호반이 다른 주주와의 약정 등을 통해 한진칼의 의사결정권을 잡고 대한항공의 이사 선임 권한 등을 획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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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삼성 사례로 미리 엿보는 미래
한진칼과 대한항공처럼 정부가 모회사 지분 거래를 심사하면서 방산 자회사까지 들여다본 사례가 있다. 바로 한화와 삼성이다. 한화는 2015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인 삼성테크윈의 지분 32.4%를 사들였다. 그런데 삼성테크윈은 한화시스템의 전신인 삼성탈레스 지분을 50%나 들고 있었다. 그러자 산업부는 삼성테크윈뿐 아니라 삼성탈레스까지 두 회사에 대한 인수를 모두 심사했고 허가했다. 당시 주주가 바뀌어도 생산 시설과 인력 등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만 한화는 삼성테크윈의 경영권을 넘겨받는 계약을 맺으며 일찌감치 매수 기반을 마련했다. 호반이 일반 지주사인 한진칼 주식을 장내에서 매입해 대한항공을 달고 오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또 10년 사이 규제도 한층 까다로워졌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국방부 장관도 방사청장과 함께 사전 협의 대상으로 추가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방 장관이 방산업체에 대한 거래가 군사 기밀 유출 등을 비롯해 국가 안보에 중대한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보면 산업 장관이 허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방산만 떼어 내는 것도 쉽지 않네
만의 하나 대한항공에서 방산만 떼어도 쉽지 않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방위사업법 시행령은 방산 물자 생산 부문을 분리해 새로운 법인을 세우거나 일괄 처분하는 경우도 지배구조 변화로 명시해 붙이든 떼든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계약을 옮기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새 법인이 방산을 맡게 되면 2조 6천억 원을 웃도는 수주 잔고를 가져와야 하는데 각 발주처와의 계약서에 작업 수행 주체를 바꿀 수 있는 조항 등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
끝으로 설비도 걸려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부산시와 2천억 원 규모의 투자 양해 각서를 작성하고 부산 테크 센터에 연면적 5만 2,892㎡의 항공 우주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 양해 각서에서도 투자 주체가 바뀌어도 유효한지 살펴야 한다.
호반과 한진칼 간 지분 경쟁에서 방산이 변수로 꼽히는 이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