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가 고점 대비 38% 급락하며 외환위기 때보다 빠르게 흔들리고 있지만, 이번 조정은 원화 급락과 신용 경색을 동반했던 과거 금융위기와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업 이익 전망이 유지되면 지수는 5150선에서 바닥을 다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ADVERTISEMENT
이상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19일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가 대만보다 큰 폭으로 하락한 원인도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가 아닌 메모리 편중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공급 과잉 우려에 민감한 메모리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52%를 차지하면서 파운드리 중심인 대만보다 낙폭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비중 비슷한데…메모리 편중이 낙폭 갈랐다
ADVERTISEMENT
한국과 대만 증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5%, 58%로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은 메모리 비중이 52%에 달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전체 시가총액의 50%를 차지한다. 메모리를 제외한 나머지 반도체 분야의 비중은 1%에도 못 미친다.
반면 대만은 파운드리와 패키징 비중이 45%에 달한다. 파운드리는 중국발 메모리 공급 과잉 논쟁에서 벗어나 있는 데다 TSMC의 3분기 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모리는 범용 제품 가격이 공개적으로 거래돼 공급 확대 우려가 곧바로 가격과 실적 전망에 반영된다. 파운드리는 장기계약과 고객별 맞춤 공정이 중심이어서 상대적으로 가격 가시성이 높다.
미국은 칩 설계와 클라우드·플랫폼, 일본은 반도체 장비 등으로 인공지능(AI) 수혜 분야가 분산돼 있다. 반면 한국은 메모리 이외의 반도체 기업 비중이 작아 반도체 업종 안에서 발생하는 순환매조차 지수 내부에서 소화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ADVERTISEMENT
●외환위기보다 빠른 급락…“위기의 조건은 달라”
코스피는 지난주 14.5% 떨어져 1980년 이후 다섯 번째로 큰 주간 낙폭을 기록했다. 지난 15일에는 외국인이 3조600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면서 지수가 7.6% 급락했고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ADVERTISEMENT
하락 속도는 과거 위기 때보다도 가파르다. 코스피는 고점 이후 84거래일 동안 38% 하락했다. 올해 하루 5% 이상 움직인 날도 37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의 33일과 정보기술(IT) 버블 붕괴기인 2000년의 20일을 넘어섰다.
다만 신영증권은 현재 상황을 금융위기와 같은 구조적인 위기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과거 급락기에는 원화 가치 하락과 신용 경색, 기업 이익 추정치 붕괴가 동반됐지만 지금은 원화가 고점 대비 15%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이달 초 5.3%에서 5.07%로 낮아졌고 미국 증시의 조정 폭은 2% 안팎에 그친다.
ADVERTISEMENT
금리와 물가, 반도체 지표를 종합하면 현재와 비슷한 시기는 2004년과 2006년으로 분석됐다. 당시에도 미국의 통화 긴축과 유가 상승 속에 반도체 업종이 조정받았지만 기업 이익 전망은 유지됐다. 이후 12개월 동안 코스피는 각각 39.4%, 35.5% 상승했다.

●이익 유지 땐 5150선…극단적 하방은 4640선
신영증권은 코스피의 1차 하단을 5150∼5250으로 제시했다. 지난 16일 종가인 5668보다 7∼9% 낮은 수준으로,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4배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가 겹치는 구간이다.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PER은 4.3배로 2000년 이후 가장 낮다. 반면 선행 PBR은 1.1배로 장기 평균과 비슷하다. 시장이 현재의 사상 최대 이익을 지속 가능한 수준이 아닌 정점으로 보고 미래 실적 악화를 미리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익 전망이 유지되면 5150∼5250선에서 바닥을 다진 뒤 7200선까지 반등할 수 있다고 봤다. 극단적인 하방 시나리오로는 PBR 0.9배인 4640선을 제시했다. 다만 이 수준까지 떨어지려면 빅테크의 2027년 설비투자 축소와 메모리 가격 상승세 중단, 국내 반도체 기업의 이익 전망 하향이 함께 나타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영증권은 현재까지 이익 전망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4640선까지의 하락 가능성보다 5150∼5250 부근에서 하단을 형성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급락 뒤 단기 반등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 이후 코스피가 한 주 동안 10% 넘게 떨어진 21차례 가운데 16차례인 76%는 다음 주 반등했다.
●추격 매도보다 보유…10월 말 실적이 분기점
이 연구원은 “선행 PER 4.3배 수준에서 추격 매도하는 것은 실익이 낮다”며 기존 보유 종목은 유지하되 신규 매수와 비중 확대는 주요 이벤트를 확인한 뒤 분할 접근할 것을 권고했다.
시장의 1차 분기점은 빅테크와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 발표가 몰린 10월 마지막 주다.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이 제시할 내년 설비투자 계획을 통해 AI 투자 지속성과 자금 조달 여력을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에서는 2027∼2028년 메모리 수급 전망과 HBM4 계약가격, 장기공급계약, 주주환원 정책이 관건으로 꼽혔다. 신영증권은 이익 전망이 유지되는 가운데 외국인이 3거래일 연속 현물과 선물을 함께 순매수하고 변동성지수인 VKOSPI가 40 아래에 안착하는지를 수급 복귀의 확인 기준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