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59.69

  • 324.11
  • 6.02%
코스닥

644.27

  • 34.14
  • 5.03%
1/5

'나의 아저씨' 작가도 한숨…잘나가던 K드라마 무슨 일이 [김예랑의 K컬처인사이드]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나의 아저씨' 작가도 한숨…잘나가던 K드라마 무슨 일이 [김예랑의 K컬처인사이드]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글로벌 차트 상위권에 한국 드라마가 이름을 올리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러나 흥행 소식이 들려오는 동안 국내 제작 편수는 2년 만에 약 30% 감소했다. 화면 밖 제작 현장에선 다음 작품을 시작할 돈과 일자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 제작사와 작가, 방송사 등 12개 단체가 모였다. 이들이 꺼낸 요구는 5년간 1조원 규모의 투자·지원체계 마련이다. 세계 시장에서 거둔 성과가 다음 작품을 만드는 자금으로, 제작진의 다음 일자리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호소였다.

    ADVERTISEMENT


    해외에서 한국 콘텐츠를 찾는 수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2025년도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따르면 2024년 넷플릭스 전체 시청시간에서 한국 콘텐츠가 차지한 비중은 8.8%였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같은 해 국내 방송사업자의 외주제작비는 9878억원으로 전년보다 2.2% 줄었다. 해외 시청자의 재생 버튼은 눌리고 있지만, 국내 현장의 제작 결정은 그만큼 늘지 않은 셈이다.
    ◆ 세계로 넓어진 화면, 국내에선 줄어든 편성표
    드라마 한 편이 시청자에게 도착하려면 먼저 편성표의 한 자리를 얻어야 한다. 투자자를 모으고 배우와 제작진을 꾸려도 내보낼 곳을 찾지 못하면 제작에 들어가기 어렵다. 지금 업계가 마주한 벽도 여기에 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등 기자회견 참여 단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41편에서 2년 만에 약 30% 감소했다. 지상파 3사의 드라마 편성은 2012년 91편에서 2023년 32편으로 축소됐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접하는 경로는 다양해졌지만, 국내 제작사가 작품을 공급할 기회까지 함께 넓어진 것은 아니다.

    ADVERTISEMENT


    방송사의 지갑을 채우던 광고 시장부터 위축됐다. 방미통위 평가에 따르면 2024년 방송광고 시장 규모는 2조1976억원으로 전년보다 6.8% 감소했다. 전체 광고시장에서 TV 방송광고가 차지하는 비중도 17.7%로 1.5%포인트 낮아졌다.

    수입은 줄고 작품 한 편에 들어가는 비용은 커졌다. 업계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장 이후 높아진 제작비와 방송사의 투자 여력 감소를 제작 위축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방송사가 비용 부담에 편성을 줄이면 제작사는 투자금을 모으기 어려워지고, 신규 작품 개발과 인력 채용도 뒤로 밀린다.


    해외 판매가 이 공백을 모두 메워주기도 어렵다. 판매 가능성이 높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의 자금 조달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만들수록 손해"라는 말도 나온다. 글로벌 흥행작의 존재만으로 국내 제작 현장 전체가 활기를 띠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 흥행한 드라마, 다음 작품의 돈이 되는가


    제작사에는 작품을 완성한 뒤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남는다. 투입한 비용을 회수하고, 다음 이야기를 개발할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다. 한 작품의 성공이 다음 제작으로 이어져야 사업도 지속할 수 있다.

    ADVERTISEMENT


    업계가 지식재산(IP)과 흥행 이후의 수익 배분을 거론하는 배경이다. 송병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OTT와 국내 드라마 제작 업계가 IP 수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구조와 성공률에 따른 이익 배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작품을 납품할 때 받는 대가에 더해, 성공한 뒤 발생하는 수익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다. 세계적인 흥행을 거뒀다는 소식과 제작사의 투자 여력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ADVERTISEMENT


    다만 계약의 속사정은 IP 보유 여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글로벌 OTT는 국내 제작사의 판매처인 동시에 제작비를 공급하는 투자자이기도 하다. 초기 비용과 흥행 위험을 누가 부담했는지에 따라 권리와 수익을 나누는 조건도 달라진다. 제작사가 확보한 권리뿐 아니라 투자 조건, 추가 보상, 후속 사업의 가능성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대형 제작사도 비용을 줄이고 판매처를 넓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해 2월 공개한 기업설명회 자료에서 2024년 4분기 편성 회차와 대작 중심 오리지널 공급 감소로 매출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신작 선판매와 판매 지역 확대, 제작비 절감으로 실적 영향을 방어했으며 실비 정산 확대와 입찰 시스템 구축 등 비용 효율화 방안도 제시했다.

    ADVERTISEMENT


    더 큰돈을 들여 더 큰 작품을 만드는 방식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얼마를 투자할지에 앞서 어디에 팔고, 어떻게 비용을 회수할지까지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 다음 작품을 기다리다, 현장을 떠나는 사람들


    제작 편수 감소는 통계에 숫자로 남지만 현장에서는 일감이 끊기는 문제다. 작품 하나가 무산되면 그 작품에 참여하려던 작가와 배우, 촬영·조명·미술 인력의 일정도 함께 비게 된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쓴 박해영 작가이자 한국방송작가협회 저작권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저희 팀 보조작가 전원이 놀고 있고, 이야기 창작자들이 웹툰이나 게임 등 다른 장르로 넘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태봉 한국방송촬영인협회 회장과 김종창 한국드라마PD협회 회장도 숙련된 스태프의 이탈과 제작 인력의 생계 문제를 거론했다. 당장 작품 몇 편이 줄어드는 데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우려다.

    드라마 현장은 신인이 경험을 쌓고 숙련자로 성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보조작가는 제작 과정에서 이야기를 다듬는 법을 배우고, 신입 스태프는 선배와 함께 움직이며 기술을 익힌다. 다양한 규모의 작품이 꾸준히 만들어져야 이 과정도 이어진다.

    소수 대작만으로는 그 자리를 모두 채우기 어렵다. 제작 공백이 길어져 인력이 빠져나가면 이후 투자가 회복돼도 현장을 다시 꾸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지금 줄어드는 것은 올해의 일감이자, 다음 세대가 진입할 기회인 셈이다.
    ◆ 1조원으로 되살려야 할 것은


    업계가 제시한 해법은 연간 제작 편수 회복을 국가 정책목표로 삼고, 5년간 1조원 규모의 투자·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방미통위, 국회가 참여하는 종합 대응도 요청했다.

    구상은 작품당 100억원 수준의 중저예산 드라마를 매년 40편가량 제작하자는 것이다. 필요한 연간 4000억원 가운데 정부가 절반을 지원하고 방송사와 플랫폼이 나머지를 분담하는 방식이다. 업계도 제작비 구조 합리화와 공정한 제작 관행 정착을 자구 과제로 내걸었다.

    제작사의 권리 확보를 돕는 지원사업은 이미 시행 중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6년 OTT특화 콘텐츠 제작지원(IP확보형 드라마)' 공고는 장편에 작품당 최대 20억원씩 5편 내외, 중편에 최대 10억원씩 5편 내외를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제작사의 IP 권리 확보도 사업 목적에 명시했다.

    새로운 지원 논의에서는 돈의 규모만큼 쓰임새가 중요해진다. 민간 투자를 어떻게 끌어낼지, 완성한 작품을 어느 방송사와 플랫폼에서 선보일지, 흥행 수익을 어떤 기준으로 나눌지 구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지원이 실제 인건비 지급과 신진 인력의 참여 기회로 연결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송 회장은 "100편 중 1편의 글로벌 대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를 모으고 일자리를 보장하는 나머지 99편"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흥행작도 수많은 작품을 만들며 쌓은 경험과 인력 위에서 나온다. 차트에 오른 드라마의 순위만큼, 그 뒤에서 준비 중인 작품이 몇 편인지 살펴야 할 때다. 다음 작품을 시작할 수 있어야 K드라마의 다음 흥행도 기대할 수 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