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주 수출을 늘리고 싶어서 아이돌 멤버를 모델로 쓰려고 하는데 누가 좋을까요?"
해외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국내 뷰티 브랜드 마케터가 털어놓은 고민입니다. 한때 해외에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할리우드 배우나 현지 유명인을 찾았다면 이제는 한국 아이돌이 먼저 거론됩니다. K팝 스타나 한류 배우 등이 세계적인 팬덤을 확보하면서 광고 모델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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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국내 기업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샤넬과 디올, 프라다 같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도 한국 연예인을 모셔가기 바쁩니다. 과거에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모델로 기용했다면 이제는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 캠페인과 패션쇼의 중심에 세웁니다. 해외 길거리에서 국내 연예인들의 얼굴을 찾아보는 건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왜 K스타에 꽂혔을까요. 단순히 한국 연예인의 인기가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들이 패션쇼에 참석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몇 장을 올리는 것만으로 수백억원에 해당하는 홍보 효과가 발생한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3장에 157억원?…디올이 지수 모셔가는 이유
대표적인 사례가 블랙핑크 지수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의 관계입니다.ADVERTISEMENT
지수는 2021년 디올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발탁된 이후 주요 컬렉션과 광고 캠페인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아시아 지역에서 디올을 알리는 모델이 아닙니다.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하고 글로벌 캠페인에 등장하면서 전 세계에 브랜드를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 효과는 숫자로도 나타납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분석업체 레프티(Lefty)에 따르면 지수는 2024년 가을·겨울(FW) 디올 패션쇼와 관련해 인스타그램 게시물 단 3개로 1180만달러(약 157억원)의 획득미디어가치(EMV)를 창출했습니다. 당시 디올이 해당 행사에서 거둔 전체 EMV의 26%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EMV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과 온라인 반응 등을 광고비 가치로 환산한 추정치입니다. 실제 매출이나 디올이 벌어들인 수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수라는 인물이 브랜드의 온라인 홍보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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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도 마찬가지입니다. 샤넬은 지난해 3월 공개한 '샤넬 25' 핸드백 캠페인에 블랙핑크 제니와 영국 팝스타 두아 리파를 함께 등장시켰습니다. 세계적인 팝스타와 K팝 스타가 나란히 글로벌 광고의 주인공이 된 겁니다. 패션 전문지 '보그'에 따르면 해당 캠페인은 샤넬 인스타그램에서 조회수 930만회, 좋아요 46만개를 기록했습니다.
프라다도 그룹 엔하이픈을 글로벌 앰버서더로 기용했습니다. 2023년 밀라노 남성 패션위크에서 엔하이픈의 프라다 관련 게시물은 720만달러(약 96억원)의 EMV를 창출했습니다. 이는 당시 프라다 전체 EMV의 약 23%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BTS 5명에 수백억원 효과…패션쇼까지 바꾼 팬덤
브랜드마다 계약 조건과 광고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 행사장에 등장하는 순간 그 브랜드를 알리는 콘텐츠가 전 세계 팬들의 SNS로 퍼져 나간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영향력은 개별 광고 캠페인을 넘어 세계적인 패션쇼에서도 확인됩니다.ADVERTISEMENT
레프티가 2025년 가을 패션위크에 참석한 방탄소년단(BTS) 멤버 5명이 창출한 EMV를 계산한 결과 총 3926만달러(약 521억원)에 달했습니다. 당시 RM은 보테가 베네타, 진은 구찌, 지민은 디올, 뷔는 셀린느, 정국은 캘빈클라인 관련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들이 브랜드에 가져다준 홍보 효과를 합치면 수백억원 규모로 추산된다는 얘기입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K팝 스타를 찾는 이유는 이들이 단순히 유명해서만은 아닙니다. 팬덤이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다른 스타들과 차별화되기 때문입니다. 패션쇼는 원래 초청받은 소수의 관계자와 고객이 참석하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스타가 참석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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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공항 출국 장면부터 행사장 입장, 착용한 의상, 다른 참석자와의 만남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합니다. 패션쇼가 끝난 뒤에도 관련 사진과 영상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SNS로 확산됩니다. 브랜드가 제작한 광고 콘텐츠뿐 아니라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콘텐츠까지 홍보 효과를 더하는 겁니다.
'보그 비즈니스'에 따르면 2024년 봄·여름(SS) 컬렉션 당시 파리 패션위크에서 디올이 거둔 SNS 홍보 효과의 45%가 지수에게서 나왔습니다. 지수의 관련 인스타그램 게시물 평균 참여율은 7.1%였습니다. 같은 비교에서 미국 유명인 카일리 제너의 참여율은 0.97%였습니다.
팔로어가 많다고 반드시 더 큰 홍보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수천만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스타보다 실제로 사진을 공유하고 댓글을 남기며 브랜드 이름을 확산시키는 팬덤이 더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제니가 디자인까지 참여했더니…출시 직후 품절
그렇다면 SNS에서 수백억원의 홍보 효과를 거뒀다는 수치가 실제 매출로도 이어질까요.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최근 K팝 스타와 단순 광고 계약을 넘어 상품 협업까지 확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니와 캘빈클라인의 협업이 대표적입니다.제니는 2023년 캘빈클라인과 함께 속옷과 의류 등을 포함한 한정판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단순히 캘빈클라인 옷을 입고 광고를 찍은 게 아닙니다. 제니의 취향과 이미지를 제품에 반영해 별도의 컬렉션을 만든 겁니다.
보그에 따르면 해당 컬렉션은 출시 직후 1초 만에 품절됐습니다. 브랜드가 이 협업으로 확보한 미디어영향가치(MIV)는 860만달러로 추산됐습니다. MIV 역시 SNS와 언론 보도 등에서 발생한 홍보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한 추정치입니다.
제니는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와도 여러 차례 협업했습니다. 제니의 이름을 내건 컬렉션이 출시될 때마다 일부 제품이 품절되는 등 관심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광고 모델의 역할 변화 입니다.
기존에는 연예인이 브랜드의 옷을 입고 제품을 홍보했다면 이제는 연예인 자체가 상품을 기획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스타가 평소 보여준 패션 취향과 이미지가 제품 디자인에 반영되고, 팬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취향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제품을 구매합니다. 브랜드가 단순히 '유명한 얼굴'을 빌리는 게 아니라 스타가 쌓아온 이미지와 팬덤의 소비력을 함께 활용하는 셈입니다.
미국 공략하는 K뷰티도…아이돌 모시기 경쟁

이런 흐름은 한국의 뷰티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달러(약 15조1267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미국 수출액은 약 22억달러(약 2조9192억원)로 중국을 제치고 최대 수출 시장에 올랐습니다. 화장품 수출 대상국도 2024년 172개국에서 지난해 202개국으로 늘었습니다.
한국 화장품의 해외 판매가 늘면서 브랜드들이 광고 모델을 선정하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내 인지도가 높은 배우나 아이돌을 모델로 기용하고 국내 광고를 해외에서도 활용하는 방식이 많았다면 이제는 진출하려는 국가에서 누가 인기가 있는지를 먼저 따집니다.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브랜드라면 북미 팬덤이 두터운 아이돌을, 동남아시아 진출을 추진한다면 현지에서 인지도가 높은 스타를 찾는 식입니다.
특히 해외 유통망을 넓히는 중소·중견 뷰티 브랜드에 이런 전략은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현지 소비자에게는 낯선 브랜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스타가 광고에 등장하면 제품을 처음 접할 계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해외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역사와 제품 특징을 설명하는 대신 이미 글로벌 팬덤을 가진 연예인의 인지도를 빌리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샤넬과 디올은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와 유통망을 확보한 브랜드입니다. K팝 스타가 광고에 등장하면 소비자가 관심을 보인 뒤 실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매장과 온라인몰이 갖춰져 있습니다.
반면 해외 시장에 막 진출하는 뷰티 브랜드는 상황이 다릅니다. 유명 아이돌이 광고해 제품을 검색하더라도 현지에서 쉽게 구매할 수 없다면 관심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글로벌 팬덤이 크다는 사실과 그 팬덤을 자사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6개월에 20억원?…스타 몸값만큼 커진 고민
문제는 비용입니다.업계에서 최상위권으로 분류되는 연예인의 글로벌 광고 모델 계약은 6개월에 15억~20억원 수준으로 거론됩니다. 모델료는 연예인의 인지도뿐 아니라 광고를 집행하는 국가와 기간, 매체, 초상권 활용 범위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모델료만 계산해서도 안 됩니다. 광고 영상을 제작하고 해외 매체에 집행하는 비용, 팬덤을 겨냥한 프로모션과 유통 행사 비용까지 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십억원을 들여 글로벌 스타를 기용했는데 SNS 조회수만 높고 제품 판매는 늘지 않는다면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K팝 스타의 팬덤이 크다고 모든 팬이 해당 브랜드의 소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구매하는 소비자와 수만원대 화장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다릅니다. 팬들이 광고 사진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행동과 실제 지갑을 여는 행동 사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광고 효과를 평가할 때는 조회수와 EMV뿐 아니라 실제 신규 고객이 얼마나 늘었는지, 광고에 등장한 제품이 얼마나 팔렸는지, 해외 판매가 지속되는지까지 살펴봐야 합니다.
지수의 사진 3장이 만들어낸 1180만달러의 홍보 효과와 제니 협업 상품의 품절은 K스타가 글로벌 브랜드에 얼마나 매력적인 광고 자산이 됐는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 사례가 모든 기업에서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콧대 높던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연예인을 글로벌 광고의 중심에 세우는 시대가 됐습니다. K팝 스타의 몸값이 높아진 이유도 단순히 한국 문화가 인기여서가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의 관심을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팬덤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업들이 풀어야 할 과제는 그 관심을 실제 구매로 연결하는 일입니다. 유명한 얼굴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처음 보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산 제품을 다시 구매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제품 경쟁력과 가격, 유통망입니다. K스타를 모셔오는 데 얼마를 썼느냐보다 그 팬덤을 얼마나 오래 고객으로 남길 수 있느냐가 글로벌 광고 경쟁의 다음 성적표가 될 전망입니다.
브랜드는 왜 하필 그 얼굴을 택했을까요. [얼굴전략]은 연예인부터 인플루언서, 심지어 버추얼 캐릭터까지 브랜드가 앰버서더나 모델로 낙점한 인물의 이미지와 서사를 파고드는 코너입니다. 캐스팅 배경에 깔린 마케팅적 계산, 그리고 그 선택이 실제로 브랜드에 어떤 파급 효과를 남겼는지를 데이터와 반응으로 짚어봅니다. 화려한 얼굴 뒤에 숨은 냉정한 전략, 그 방정식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구독하시면 매주 더 쉽고 빠르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