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533.77

  • 201.89
  • 3.52%
코스닥

764.10

  • 28.66
  • 3.62%
1/4

[한경에세이] 첫 번째에서 백 번째까지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한경에세이] 첫 번째에서 백 번째까지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살다 보면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는 숫자가 있다. 내게는 ‘1’이라는 숫자가 그렇다.

    10여 년 전 현대자동차에서 일할 때 우리나라에 자율주행차 임시운행허가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현대자동차가 국내 첫 번째 허가를 받았고, 나 역시 자율주행 기술이 연구소를 벗어나 실제 도로로 나오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지금은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에는 모든 게 새로운 일이었다.

    ADVERTISEMENT


    이후에도 이상하게 ‘첫 번째’와 인연이 이어졌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우리나라 기업 최초로 자율주행 시험운행 면허를 받는 일을 했고, 경일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초소형 전기차와 버스를 기반으로 국내 대학 최초의 자율주행 임시운행허가를 받았다. 직장도 역할도 바뀌었지만, 돌아보면 계속 자율주행차를 도로에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료들과 회사를 차렸다. 처음에는 몇 대 되지 않던 자율주행차가 하나둘 늘어났고, 창업 8년 만에 우리 회사가 받은 임시운행허가가 100번째를 맞이했다. ‘100’이라는 숫자를 들으니 묘하게도 가장 먼저 ‘1’이 떠오른다. 자율주행차 한 대가 도로에 나가는 것 자체가 특별하던 시절에는 한 회사가 백 번째 허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백 번째라는 숫자는 하나의 기록이라기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이정표처럼 느껴진다.

    ADVERTISEMENT


    회사를 시작한 뒤 내 주변의 숫자도 계속 달라졌다. 몇 명이 한 공간에서 일하던 회사의 직원이 10명을 넘었고, 어느 날 100명으로 불어났다.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하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다시 200명을 넘어섰다. 돌이켜보면 자동차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 자동차를 만들고 움직이는 사람의 숫자도 함께 증가했다.

    자동차의 숫자도 커지고 있다. 올해 우리가 준비하는 자율주행차까지 더하면 이제 200대에 육박한다. 내년에는 1,000대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도로에 내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몇 대의 자동차를 어떻게 도로에 내보낼지 고민하던 때를 생각하면 나 자신도 가끔은 낯선 숫자다. 그만큼 이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크기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첫 번째는 뉴스가 되지만 두 번째부터는 일이 된다. 열 번째를 지나면 어느새 일상이 되고, 그렇게 평범한 하루가 쌓이다 보면 백 번째라는 숫자를 만난다. 처음 시작하는 용기만큼이나 같은 일을 오래 계속하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요즘은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100번째를 맞은 지금, 숫자 자체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직원 한 명이 열 명이 되고, 백 명이 다시 이백 명이 되는 동안 각자의 하루가 쌓였고, 그 시간이 없었다면 백 번째라는 숫자도 없었을 것이다.

    회사를 시작한 지 8년, 우리는 이제 백 번째 허가를 지나 더 큰 숫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언젠가 천 번째를 이야기하는 날에도 첫 번째 한 대를 도로에 내보내던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숫자가 커져도 그 마음만큼은 작아지지 않는 것. 그것이 앞으로 더 큰 숫자를 감당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