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선호도 조사를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노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가 40%로 박정희 전 대통령(24%)을 크게 앞섰다. 자신을 중도 성향이라고 밝힌 응답자 중 노 전 대통령을 선택한 비율은 39%, 박 전 대통령을 택한 비율은 23%였다. 보수층은 52%가 박 전 대통령에게, 진보층은 59%가 노 전 대통령에게 몰표를 줬다. 중도층의 선택이 전체 순위를 갈랐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진영보다 국익 택한 노무현
노 전 대통령이 중도층에게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주요 현안에서 이념에 치우치기보다 실용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임기 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며 한 말이 대표적이다.노 전 대통령은 2006년 8월 언론 인터뷰에서 FTA로 농민이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에 “개방을 미룬다고 농업이 보호되는 것이 아니며 개방은 경쟁을 통해 우리 체질을 키우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2007년 8월에는 FTA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을 향해 “유연성 없는 낡은 사고는 교조적”이라며 “세상이 변하면 이론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1월 신년 연설에서는 “눈앞의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국가의 미래가 걸린 대외 개방을 미루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ADVERTISEMENT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 진보 진영뿐 아니라 중도층에서도 많은 기대를 받았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9개월 만에 66%(한국갤럽 기준)까지 치솟은 게 이를 잘 대변해준다. 2025년 6월 대선 때 득표율(49.42%)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부의 지향점을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낡은 이념을 버리고 오직 국민과 대한민국의 문제만 생각하겠다”며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고 했다.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기업인 출신을 내각에 중용하는 모습은 이전의 진보 진영 대통령들과 차별화되는 행보였다.
구조적 다수론에 거는 기대
정부가 추진하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이 대통령이 나서서 중단한 것은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실용주의 정부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의 발언과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다. 이 대통령은 “농어민과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27%)과 농림어업(1.5%)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하면 어떤 선택이 국익에 부합하는지는 자명하다.ADVERTISEMENT
이 대통령이 중도층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구조적 다수론’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상황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중도와 합리적 보수가 동의하는 판으로 가야 한다. 그 동의를 받는 상태가 구조적 다수”라고 말했다. 경제계에서는 메가특구에서 주 52시간제 예외 등을 허용하는 데 대통령이 앞장서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용주의 정부를 만들겠다는 이 대통령의 임기 초 약속이 현재진행형이길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