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전당대회’가 있었다.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자리였다. 인기 절정에 신망(信望)까지 누리던 한 남성 코미디언이 행사 게스트로 등장했다. 그는 ‘주최 측이 준 대본대로’ 우스갯소리를 하게 된다.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情)을 주는 당이고, 통민당(통일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다.” 한데 이 우스갯소리가 상당수 국민들에게는 우스갯소리가 아니었고, 이후 그의 삶은 환란과 회한(悔恨)에 갇히게 된다. 저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방송사와 그의 자택으로 항의전화가 빗발쳤으며, 출연 프로그램 하차와 광고 전속 계약 해지 등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이 사건 발생 약 1년 만에 그의 부친은 병세가 악화돼 별세했다.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익혀왔던 그는 대학강사에서 새 길을 찾았고, 몇 번 시도는 해봤지만 제대로 된 코미디언으로는 되돌아가지 못한 채 과로와 스트레스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했다.이게 내가 처음 목격했던, 대중문화예술인이 정치문제와 엮이는 바람에 엄청난 타격을 입은 사례다.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가 놀라고 있는 건, 상당수 대중이 한 번 그렇게 정치적 사안으로 이미지가 훼손된 대중문화예술인을 다시 예전처럼 대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찍히면, 한 세대 이상이 그러는 거 같다. 용서하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다. 그는 기회가 있을 적마다 그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지옥 같은 대가도 치렀다. 그런데도 대중은 그를 다시 코미디언으로 대하는 것만큼은 버거워했다. 나는 대중문화예술인의 그런 ‘유리잔 같은 실존’을 떠올릴 적마다, 깨어지기 쉬운 ‘인간의 영화(榮華)로움’에 관해 숙고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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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한국 대중문화예술인들은 이런 이치를 얕잡아보거나 염두에 두지조차 않으며 ‘개념 연예인’ 노릇을 만끽해왔다. 가장 큰 이유는 이렇다. 정치적으로 얼추 절반씩 갈라진 우리 사회에서 좌파 대중의 편만 들면 돈과 인기와 스타일링 등을 향유할 수가 있고, 자신이 외면하고 조롱한 나머지 절반의 대중은 이에 홀린 듯 이용당하거나 주눅이 들어 있거나 침묵해왔기 때문이다. 이념 이전에 이러한 전제조건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예술인들의 ‘개념연예인 떼거리 문화’는 불가능했다. 문화산업의 이익 셈법이 그러하기 때문이고, 대중문화예술인이 저 코미디언이 활동하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부와 영향력과 사회적 대접을 누리는 시대라서 더욱 그렇다.
한데 가령, 1500만 관객을 충분히 예상하고 제작한 손익분기점 400만 관객의 영화가 어떤 정치적 이슈로 인해 500만 관객이 들었다면,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은 넘었으니 상업적으로 실패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만약 그런 식의 정치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이런 상업적 마이너스 패턴이 고착화되거나 더 악화된다면? 여기서는 노이즈마케팅도 크게 작동될 수가 없다. 또한 가령, 대부분의 대중에게 호감이던 한 배우가 그 대중의 절반을 잃는 것만이 아니라, 그 대중의 절반이 그 배우를 증오하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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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들 대중문화예술인들은 억울해해서는 안 된다. ‘이념과 신념 때문에’ 그래왔던 거라면 ‘당연히’ 계속 그렇게 살면 된다. 그러나 이득을 챙기고 정의로운 척까지 하면서 비판까지 피해갈 수는 없다. 왜 선택적 책임감 아래 전폭적 희락만 누리려고 하는가. 자신의 인기를 자신의 지성과 양심, 판단력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대중을 가르치고 선도한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현대 자유민주공화정은 ‘공정한’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을 기본으로 한 ‘비폭력 정치적 내전상태’에서 존속된다. ‘문화전쟁’은 이미 유구(悠久)하며 좌익이 원조(元祖)이자 독점이다. 이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절반의 대중이 정치 패션으로 온갖 재미를 보던 문화예술인들에게 ‘거울치료’를 시작했다. 특히 젊은 대중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모든 진영들 간의 ‘공평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까지 내로남불인 꼴을 더는 못 봐주겠다는 거다.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대중에게 드러내지 않는 게 대중문화예술인의 매너(계산)가 되는 시대가 왔다. 2026년 가을, 판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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