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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위대한 음악가의 등용문이었다. 1937년 처음 열렸을 땐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그다음 해 피아노 부문으로 열렸을 땐 에밀 길렐스가 우승했다. 1988년 성악, 2017년 첼로 부문이 추가된 뒤엔 각 부문을 번갈아 4년 순환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 첼로 부문에선 이탈리아 로마에서 나고 자란 에토레 파가노가 우승했다. 한국의 김태연도 2위에 올랐다.
지난 9월 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우승자 투어 콘서트로 파가노의 연주를 직접 마주했다. 첼로의 그윽하고 깊은 음색을 십분 활용한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열정적인 관객 호응을 이끌어냈다. 파가노는 지난 10일 ‘장한나의 대전그랜드페스티벌’에서 장한나 예술의전당 사장의 지휘로 폐막 공연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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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일정 중 만난 그는 “관객이 연주자의 열정에 함께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심판을 하거나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에선 연주가 어떻든 똑같은 방식으로 박수 치는 청중이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땐 음악을 정말 좋아했는지 알 수 없죠”라고 덧붙였다.

콩쿠르 우승에 숨은 전략적 승부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1라운드부터 결선까지 한 달 정도 걸리다 보니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결선이 열리기 전 일주일간은 스마트폰 없이 건물 안에 갇혀 혼자 결선곡을 공부해야 한다. 파가노는 오히려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고. “콩쿠르에서는 긴장하는 순간 스스로에게 ‘난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럼 스스로 우승할 수 있다고 믿지 못하게 되죠. 콩쿠르에서 우승하려면 ‘난 콩쿠르 세계에 속한 사람이고 이런 상황을 다루는 일이 정상적’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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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 무대는 파격이었다. 파가노는 다른 응시자가 잘 고르지 않는 프로코피예프의 곡을 결선용 협주곡으로 택했다. 그도 무대에서 한 번밖에 연주한 적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위험한 선택”이었다. “무대에서 스무 번쯤 선보인 쇼스타코비치, 이보다 많이 다룬 드보르자크나 차이콥스키를 골라도 됐어요. 하지만 때론 흐름을 읽어야 해요. 프로코피예프로는 우승자가 나온 지 오래됐다고 생각했어요. 곡이 길고,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는 온갖 칸타빌레가 가득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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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수는 통했다. “프로코피예프 음악은 심사위원의 의견을 갈라놓는 협주곡입니다. 슈만처럼요. 우승할 땐 좋은 연주뿐 아니라 결선에 걸맞은 작품인지도 중요해요. 그래서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2번이 처음 우승곡이 됐을 때를 포함해 과거에 수상한 곡들을 생각했죠.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주요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된 사례가 많아봐야 세 번 정도였죠. 프로코피예프의 곡으로 우승한 사례는 이전 한 번뿐이었던 것 같아, 이 작품이 다시 빛날 때가 됐다고 봤습니다.”
프로코피예프가 이탈리아 베로나가 배경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레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탈리아 출신인 파가노와 결이 맞는 부분도 있었다. “프로키피예프의 음악은 개방적이고 명료합니다. 선율은 신고전주의적이고요.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거의 들지 않고,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좋아할 수 있죠. 이러한 면모는 ‘이탈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탈리아인이 삶을 단순하고 즐겁게 살길 바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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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잘스의 전통을 이어서
파가노는 우승 특전으로 파블로 카잘스가 사용하던 첼로를 빌려 쓰게 됐다. 카잘스는 20세기 전반부에 활동하며 ‘현대 첼로의 아버지’로 불린 스페인 거장이다. 1733년 베네치아에서 제작한 ‘고프릴러 카잘스’를 이제 파가노가 쓰고 있는 것. “처음 이 악기에 손댔을 땐 감정이 복받쳤어요. 이 악기를 연주했던 모든 사람이 거의 유령처럼 느껴졌죠. 300년 가까이 된 악기를 만지는 게 두려울 정도예요. 물론 어느 순간엔 익숙해져야죠. 박물관에 전시할 물건이 아니라 악기니까요. 연주해야 합니다. 제가 악기에 이용당하는 게 아니라 악기를 이용해야 하죠.”
그는 첼로와의 싸움이 시작된 순간을 기억한다. 다섯 살 때 첼로를 처음 잡았지만, 그저 놀잇감에 불과했다. 어머니는 연습을 강요하지 않았다. “한 번은 연주에서 어떤 동작이 되지 않아 몹시 화가 났어요. 활을 바닥에 내리쳐 부러뜨렸고, 활 털이 사방에 날렸죠. 밥도 못 먹고, 방에 갇힌 채 잠자리에 들어야 했어요. 일곱 살쯤이었을 거예요. 저에겐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죠. 첼로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음악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음악으로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종의 충격요법도 필요한 듯해요.”

파가노는 카잘스의 계보를 잇는 첼리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스승인 안토니오 메네세스는 자니그로에게 배웠고, 자니그로는 카사도에게, 카사도는 카잘스에게 배웠다. 파가노의 또 다른 스승인 게링가스는 러시아 첼로 대가인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였다.
“전 메네세스에게 프레이징을 섬세하게 빚는 법을 익혔어요. 소리를 더하기보다 덜어내는 쪽으로요. 러시아 악파에선 프레이징을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어 덜 부각되는 면이었죠. 게링가스에게선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삼투하듯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거죠. 말로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는 거예요. 게랑가스는 에너지가 넘쳤을 뿐 아니라 콩쿠르에 나갈 동기를 심어줬습니다.”
파가노는 로스트로포비치의 또 다른 제자였던 미샤 마이스키와 3년 전 만난 기억도 잊을 수 없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으로 가르침을 받았다고. “마이스키는 연주하고 있는 저를 멈추고 완전히 다른 연주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 방식을 상상만 했다면 ‘화성적으로 이토록 섬세한 대목을 저렇게 힘을 주어 연주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그가 연주하자 추하다고 할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참 아름답다, 왜 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싶었죠. 괴상할 것 같은 해석을 시도하는데, 막상 연주하면 마법처럼 들리는 건 그의 천재성 때문일 겁니다.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마법의 손길이에요.”

“조금 거슬리는 연주로 청중 건드린다”
마이스키에게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은 카리스마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파가노가 만난 그는 자신처럼 조금 수줍고,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압도적 기세나 거친 표현이 없었는데도 음악으로 주변을 장악했다고. 파가노는 자신의 음악으로 “청중의 자아(ego)를 건드려 조금 무너뜨리려 한다”고 말했다. 완벽에 가깝지만, 작은 균열이 있는 연주로 조금의 거슬림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음악가는 자신의 해석을 중시해야지, 청중의 맘에 들려 애써선 안 된다는 얘기다.
향후 그가 조명하고 싶은 곡은 20세기 작품이다. 패르트, 바스크스, 카발렙스키 등 동유럽 작곡가로 시작해 월턴, 브리튼, 바버 같은 영미권 작곡가를 꼽았다. 현역 작곡가 중엔 외르크 비트만과 만나고 싶어 했다. “젊은 첼리스트는 새로운 음악을 위한 불꽃을 이어가야 합니다. 이전 세대가 연주했던 익숙한 협주곡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해야죠.”

AI가 작곡한 작품의 연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단다. 그는 다만 “AI는 인간보다 더 완벽한 작품을 내놓을 수 없다”고 여긴다. 결국 AI도 인간의 지식을 혼합한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다. “작곡가는 작품을 쓸 당시 어떤 심각한 문제를 겪었거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작품을 쓸 만한 이유와 의미가 있는 거죠. 컴퓨터는 그런 이유를 가질 수 없어요. AI 음악에서 빠져 있는 건 바로 그 지점, 즉 예술 작품이 우리 가운데에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취미론 이탈리아가 강국인 축구 혹은 포뮬러원을 시청하거나 체스를 즐긴다. “체스로 삶과 공연에 대해 많은 걸 배웁니다. 비슷한 스트레스와 압박, 제한 시간이 있거든요. 실수한 뒤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실수에서 회복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인생도 하루 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요. 체스는 삶을 한 단계씩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죠.” 파가노는 피렌체, 로마, 밀라노, 앤트워프, 노이부르크, 룩셈부르크, 포즈난 등 유럽 곳곳에서 올해 공연을 이어나간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