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대형 임대사업자가 보유한 주택 15만채 이상을 공공 소유로 전환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재산권 침해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했다. 독일 정부가 해외 자본 유치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주택 국유화 논의가 시장경제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르츠 총리는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의 첫 투자자 정상회의 '인베스트 인 저머니(Invest in Germany)'를 마친 뒤 주택 소유권을 둘러싼 정책적 실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재산권 보호와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에 대한 신뢰는 우리 시장경제의 기반"이라며 "이를 두고 실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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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언은 베를린에서 극좌 성향 좌파당(디링케)과 사회민주당(SPD), 녹색당이 연립정부 구성을 협상하면서 대형 임대사업자의 자산을 국유화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가운데 나왔다.
연정 협상에서 검토되는 방안은 주택 1만채 이상을 소유한 대형 임대사업자의 자산 대부분을 공공 소유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임대료 상승과 만성적인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영향을 받는 주택은 15만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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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정당은 보상금 총액을 160억유로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FT의 계산에 따르면 주택 한 채당 평균 보상액은 10만유로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실제 시장가격보다 상당히 낮다.
세 정당은 연정 협상 우선순위를 담은 문서에서 독일 헌법상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조항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토지와 기타 자산을 보상을 전제로 수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베를린의 주택 국유화 논쟁에는 과거 공공주택 민영화의 영향도 자리 잡고 있다.
독일 통일 이후 수십 년 동안 재정난에 시달리던 베를린시는 공공 소유 아파트 20만채 이상을 민간 투자자에게 매각했으며, 이후 수십억유로를 투입해 수만채를 다시 사들였다.
주택 국유화 논의는 지난 9월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좌파당이 약진하면서 본격화됐다. 주택 수용과 임대료 상한제, 주거비 부담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좌파당은 역대 최고인 25.7%를 득표하며 제1당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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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023년부터 베를린 시정부를 이끌어온 메르츠 총리의 기독민주당(CDU)은 득표율이 9%포인트 하락한 18.8%에 그쳤다. 극우 성향 독일을위한대안(AfD)은 16.3%까지 지지율을 높였다.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부동산시장에도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베를린에서 13만8000채 이상의 아파트를 보유한 최대 임대사업자 보노비아(Vonovia)의 주가는 지난주 202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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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화 대상 기업의 자산 가치와 보상 조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부각된 상황이다. 특히 보상액이 시장가격보다 낮게 책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형 임대기업의 재산권 보호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논란은 독일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기민당과 사민당 사이의 갈등도 심화시키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사민당에 베를린에서 좌파당 대신 기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사민당은 지난달 작센안할트주 선거에서 일부 기민당 지역 정치인들이 AfD의 주의회 의장 후보를 지지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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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D는 해당 선거에서 44%를 득표했으며, 인구 210만명의 작센안할트주에서는 오는 12월 전후 독일 최초의 극우 성향 주총리가 선출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베를린과 작센안할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지방선거에서 극우와 극좌 정당이 약진한 것도 메르츠 총리의 정치적 부담을 키우고 있다. 기민당의 선거 부진과 연정 내부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메르츠 총리에 대한 당내 비판도 커지고 있다. 메르츠 총리의 개인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독일 정치의 불안정성이 심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정치적 갈등에도 메르츠 총리와 사민당 소속 라르스 클링바일 재무장관은 이날 약 200명의 투자자가 참석한 행사에서 독일을 매력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투자처로 소개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메르츠 총리는 연립정부가 지난해 인프라와 국방 분야에 초점을 맞춘 대규모 공공투자 계획을 추진하기로 한 이후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는 대규모 공공투자를 기반으로 외국 자본 유치를 확대하려는 방침이다.
실제 기업들의 신규 투자 약속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아마존은 독일에 160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며, 캐나다 자산운용사 브룩필드(Brookfield)는 향후 5년간 수백억유로를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도 독일 스타트업 4곳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일 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약속한 투자 규모는 이미 950억유로를 넘어섰다.
메르츠 총리는 "독일의 저축 자금을 국내 경제로 유입시키기 위한 연금 개혁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되는 이 개혁안에는 스웨덴식 연금펀드를 도입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그는 "우리는 저축하는 나라를 투자하는 나라로 바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계 저축을 투자 자금으로 연결해 경제 전반의 투자 기반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베를린의 주택 국유화 논의는 임대료 상승과 주택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와 재산권 보호를 통한 투자 신뢰 유지라는 과제가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유화 방안이 아직 연정 협상 단계에 있는 만큼 실제 시행 여부와 보상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베를린 연정 협상의 최종 결과와 대형 임대기업의 자산 처리 방식, 독일 정부의 투자 유치 및 연금 개혁 추진 상황이 향후 주요 변수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