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외식 기업들이 한국에서 성장의 해법을 찾고 있다. 치폴레는 강남·여의도 등 국내 세 매장을 아시아 확장의 기반으로 삼고, 맥도날드는 한국에서 개발한 소스를 아시아 13개 시장에 적용했다. KFC와 중국 차 브랜드들도 한국인의 식습관과 문화를 반영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소비자가 꾸준히 찾을 상품과 운영 모델을 만들어 아시아 사업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다.
치폴레, 한국에서 다진 뒤 싱가포르로
23일 외식업계에 따르면 치폴레의 국내 운영사 에스앤씨레스토랑홀딩스(S&C)는 강남역 인근 1호점에 이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여의도 더현대서울로 출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연내 국내 세 매장을 갖춘 뒤 내년 상반기 싱가포르에 첫 매장을 연다는 구상이다. 치폴레 본사는 한국을 향후 아시아 확장의 ‘기준 시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ADVERTISEMENT
S&C는 상미당홀딩스 계열 빅바이트컴퍼니와 치폴레가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빅바이트컴퍼니는 쉐이크쉑과 잠바 등 글로벌 외식 브랜드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싱가포르의 치폴레 사업권을 확보했다. 국내 파트너의 식자재 조달과 직원 교육, 매장 운영 경험에 치폴레의 조리 방식과 브랜드 기준을 결합하는 구조다.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핵심은 맞춤 주문이다. 부리토와 보울 등의 형태를 고른 뒤 밥과 콩, 고기, 살사 등을 조합해 한 끼를 만든다. 재료를 매장에서 손질하고 조리하는 과정도 브랜드 경험으로 내세운다. 미국에서 인기를 끈 맛과 주문 문화를 국내 소비자의 일상적인 외식 선택지로 안착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달에는 공식 앱도 내놨다. 방문 전 원하는 재료를 골라 주문하고 10분 단위로 수령 시간을 지정하도록 했다. 직접 조합하는 재미를 유지하면서 대기 부담을 줄여 재방문을 유도한다. 초기 매장은 모두 직영으로 운영한다. 한국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기준을 다지는 일이 아시아 사업 확대의 출발점인 셈이다.
고추장·치밥에 팬덤과 놀이 더해
맥도날드는 국내에서 쌓은 메뉴 개발 경험을 해외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맥도날드가 지난달 선보인 고추장 버터 소스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맥크리스피 고추장 버터’와 ‘맥스파이시 고추장 버터’를 출시했고, 아시아 13개 시장에서도 관련 메뉴를 순차적으로 선보였다. 고추장의 매콤함과 버터의 고소함을 결합한 소스를 각 시장의 메뉴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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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중문화도 결합했다. 지드래곤을 모델로 기용하고 그의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한정판 굿즈를 내놨다. 국내 아시아 스페셜 팩은 버거 세트에 맥너겟과 디핑 소스, 포토카드를 묶었다. 한국의 맛에 팬덤의 소장 욕구를 더해 구매 동기를 넓혔다.
2024년 국내 운영권을 확보한 카타르 사업가 카말 알 마나 체제의 한국맥도날드는 지역 식재료를 활용하는 ‘한국의 맛’ 프로젝트도 이어가고 있다. 홍천 쌀 등 산지의 이름과 식재료 이야기를 전국 매장에서 판매하는 상품에 담았다. 지난해 매출은 1조4310억원으로 전년보다 14.5% 증가했다. 회사는 메뉴 개발과 서비스 개선, 신규 출점 등을 성장 요인으로 꼽았다.
KFC는 한국의 식습관과 놀이 문화를 활용해 고객층을 넓혔다. 국내 운영사 KFC코리아는 올해 4월 칼라일 아시아 파트너스 계열사의 지분 100% 인수가 마무리됐다. 최현석 셰프와 협업한 ‘켄치밥’으로 치킨을 밥과 함께 먹는 식사 메뉴를 선보였고, 대표 치킨을 순살로 재해석한 ‘오리지널 통다리’에는 래퍼 이영지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지난 6월 북촌 한옥마을에서 연 ‘켄터키 할아버지의 바삭한 집들이’ 팝업도 같은 맥락이다. 한옥에서 치킨을 먹으며 투호와 포토존, DJ 프로그램 등을 즐기게 했다. 미국 치킨 브랜드를 한국의 집들이 문화로 풀어내 방문하고 공유할 소재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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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속 게임을 실제 참여형 콘텐츠 ‘오통파이터’로 구현하고, 게임을 끝낸 고객에게 앱 쿠폰을 제공하기도 했다. 체험과 콘텐츠를 주문으로 연결하려는 전략이다. KF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앱 신규 가입자 중 10·20대 비중은 44%로 전년 동기보다 4%포인트 높아졌다.
매장과 골목까지 한국형 마케팅
중국 차 브랜드들도 한국 소비자와 만나는 방식을 다듬고 있다. 김좌현 대표가 이끄는 차지코리아는 지난 4월 강남·용산·신촌에 매장을 열며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매장에서 직접 우려낸 차와 우유를 조합한 음료를 앞세우고, 주요 메뉴를 5000~6000원대로 구성했다.
차지는 강남 플래그십 매장 중심에 티 바를 배치하고 한국의 처마와기와에서 영감을 받은 요소를 반영했다. 차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매장에 머무는 경험까지 상품의 일부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한국 전용 음료도 선보이며 국내 취향을 반영한 메뉴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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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의 성장 압박은 해외 시장의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차지의 올해 2분기 중화권 총거래액은 전년 동기보다 약 9% 감소했지만 해외 총거래액은 114.3% 증가했다. 출점으로 확보한 첫 고객을 단골로 바꾸려면 현지 소비자에게 맞는 상품과 매장 경험이 필요하다.
음료업계에서는 코카콜라의 지역 협업이 눈에 띈다. 서울 신흥시장에서 시작한 상인들과의 공간 브랜딩을 해방촌 골목 가게 18곳으로 넓혔다. 가게의 개성을 반영한 간판과 메뉴판, 거리 벽화 등을 통해 동네 음식과 브랜드를 함께 경험하도록 했다. 한국의 골목 상권을 활용한 이 마케팅 모델은 글로벌 차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화제성을 꾸준한 주문으로
글로벌 외식 기업들이 새 성장 모델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본토의 성장 둔화와 비용 부담이 있다. 맥도날드의 올해 2분기 미국 기존점 매출은 전년보다 0.8% 늘어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율인 2.5%를 밑돌았다. 고객당 구매금액은 늘었지만 기존점 고객 수는 줄었다. 치폴레도 같은 기간 매출이 약 33억달러로 9.3% 증가했지만, 식재료와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영업이익률은 18.2%에서 15.7%로 낮아졌다.ADVERTISEMENT
주가도 고점에서 크게 내려와 있다. 22일(현지시간) 뉴욕증시 종가 기준 치폴레는 28.14달러, 맥도날드는 252.63달러로 52주 고점보다 각각 33.3%, 26.1% 낮았다. KFC의 모회사 얌브랜즈는 154.45달러로 고점 대비 9.2% 낮은 수준이었다.
아시아에서는 각 시장의 소비 습관에 맞춰 주문 기회를 늘리고 있다. 얌차이나가 운영하는 중국 KFC는 커피 등 소액 주문을 늘려 고객 접점을 넓혔다. 2분기 기존점 거래 건수는 전년보다 4% 증가했다. 평균 구매금액이 3% 줄었는데도 기존점 매출은 1% 늘었다. 배달 매출도 26% 증가했다. 한국에서는 현지화 메뉴와 체험으로 방문 동기를 만들고, 중국에서는 커피와 배달로 일상적인 주문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 만든 성공 모델이 아시아 확장으로 이어지려면 출시와 개점 당시의 화제성을 재구매로 연결해야 한다. 한국에서 개발한 메뉴와 소스가 해외에서도 선택받고, 국내에서 다진 조리·교육·고객 응대 체계가 다른 시장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한국 사업의 성과를 판단할 기준도 매장 수와 개점 초기 매출에서 재방문율, 점포 수익성, 해외 적용 가능성으로 넓어지고 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