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의 한 중견 자산운용사 임원들이 최근 내부 회의에서 난상토론을 벌였다. 신입사원 채용 지속 여부를 두고서다. 이 운용사의 한 임원은 “매년 신입사원을 뽑아 가르쳐 놓으면 길어도 3년 안에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대형 운용사로 이직했다”고 토로했다. 급여나 처우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결국 ‘네임밸류’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는 고심 끝에 당분간 신입사원을 뽑지 않기로 했다.금융지주나 대기업 그룹사라는 든든한 ‘뒷배’를 둔 대형 운용사와 중소형 운용사 간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올 상반기 증시 활황 덕분에 2분기 자산운용업계 순이익은 2조6889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83.4% 급증했다. 하지만 전체 513개 운용사 중 절반에 가까운 42.9%가 적자를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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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운용사의 가장 큰 딜레마는 마땅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대표적이다. 공모·사모펀드를 가리지 않고 많은 중소형 운용사는 ETF 출시를 검토했지만, 실제 사업 추진 단계에서 동력을 잃은 곳이 부지기수다. 이미 대형 운용사들이 시장을 선점해 과점 체제를 굳힌 상황에서 유의미한 점유율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대형 운용사를 뒷받침하는 은행·증권 등 계열 판매사의 물량 공세를 버텨내기 힘들다는 한탄도 나온다. 예컨대 대형사 주도의 ‘최저 보수’ 출혈 경쟁은 상품 출시 후 계열 판매사들이 초기 자금을 대거 밀어주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반면 오롯이 운용 보수에 기대 수익을 내야 하는 중소형사로선 대형사 수준의 초저보수 책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상품성으로 승부를 보기도 쉽지 않다. 중소형사가 참신한 아이디어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놔도 대형사들이 곧바로 유사 상품을 내놓는 ‘미투(me-too) 전략’으로 시장을 잠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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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에서는 중소 자산운용사들의 집단 반발로 ‘의무공개매수 제도’ 법안 처리가 본회의 통과 직전에 보류되는 일이 벌어졌다. 한 운용사 대표는 “지배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식하는 관행을 깨자는 취지의 법안이 논의 과정에서 대규모 블라인드 펀드를 보유한 대형사에만 상장사 인수 기회를 몰아주는 방향으로 변질됐다”며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증시 침체로 신상품 출시가 눈에 띄게 위축된 상황에서 중소형 운용사의 설 자리마저 좁아진다면, 결국 피해는 투자자의 선택권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관심은 여전히 은행 및 대형 증권사에만 쏠려 있다. 국정감사가 한창인 지금도 자산운용업계의 생태계 위기를 제대로 짚어내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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