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비해 큰 폭으로 할인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업황 훼손보다 외국인 매도세와 한국 증시 고유의 할인 요인이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다. 특히 자회사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이 모회사 기업가치를 둘러싼 변수로 떠올랐다. 자금 조달과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상장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중복상장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맞서며 논쟁이 뜨겁다.
1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김준영 iM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마이크론의 SK하이닉스 대비 주가수익비율(PER) 프리미엄이 최근 1.60배까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9월 중순 1.40배까지 좁혀진 격차가 한 달 만에 다시 벌어진 것이다. 격차 확대는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 하락에서 나타났다.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PER은 지난달 23일 4.46배에서 최근 3.70배로 약 17% 낮아졌지만 마이크론은 5.9~6.9배 수준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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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구원은 이를 메모리 사이클 훼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이클이 원인이었다면 범용 메모리 비중이 더 큰 마이크론이 먼저 디레이팅(주가수익비율이 낮아지는 현상)됐어야 한다"며 "프리미엄 재확대는 한국 고유 요인의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iM증권은 우선 첫 번째 원인으로 외국인 수급을 꼽았다. 인공지능(AI) 기반 투자정보 플랫폼 에픽AI에 따르면 추석 연휴 이후 첫 거래일인 지난달 28일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3조24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고 SK하이닉스 주가는 5% 넘게 하락했다. 이날도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 대비 4.05% 빠지며 160만5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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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SK하이닉스의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자회사 솔리다임의 뉴욕증시 기업공개(IPO)가 주요 할인 요인으로 지목됐다. 솔리다임 상장이 현실화하면 SK하이닉스 주주 입장에서는 자회사 가치가 별도로 평가되면서 지주사형 할인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솔리다임이 상장하지 않으면 자금 조달 여력이 줄어 주주환원 규모가 축소될 수 있고, 상장하면 구조적인 디스카운트 우려가 생길 수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베스팅닷컴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최근 IPO 주관사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은행은 솔리다임의 상장 전 자금 조달을 위한 투자 유치 작업에도 참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주관사단에는 JP모건체이스와 씨티그룹, UBS그룹 등이 추가로 합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상장 시점과 주관사 구성 등 구체적인 계획은 달라질 수 있다.
솔리다임은 이번 IPO를 통해 약 100억달러(약 13조4000억원)를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장 시점은 이르면 내년 초로 거론되며, 기업가치는 최대 1000억달러(약 134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에서는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이 현실화할 경우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별도 상장에 따른 모회사 가치 희석과 투자 수요 분산 가능성 등이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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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다임은 회사가 2020년 인텔의 낸드·SSD 사업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법인이다. 인텔이 보유 기업용 SSD 경쟁력과 SK하이닉스의 낸드 기술·생산 역량을 결합해 메모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었다. 솔리다임의 핵심 사업은 데이터센터와 서버에 들어가는 고용량 eSSD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대용량 저장장치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최근 솔리다임 사업이 AI 데이터센터용 고용량 eSSD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밝혔다.
AI가 커질수록 SSD가 중요해지면서 솔리다임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서는 수천~수만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대규모 데이터를 끊임없이 읽고 쓴다. 문제는 AI 모델과 데이터셋이 커질수록 저장해야 할 데이터도 함께 늘어난다는 점이다. 특히 AI 추론이 확산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생성형 AI가 한 번 답을 내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계속 상호작용하고 에이전트가 여러 작업을 수행하면서 저장·검색해야 할 데이터가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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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AI 데이터센터에서는 GPU와 HBM만 빠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지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도 중요해지고 있다. 솔리다임이 AI용 고용량 eSSD를 전면에 내세우는 배경이다.
SK하이닉스 주주 사이에서도 솔리다임 IPO는 뜨거운 논쟁 거리다. 솔리다임의 IPO를 반대하는 한 주주는 종목 게시판에 "모회사 주주가 감수할 기업가치 희석과 중복상장 논란은 누가 책임지는가"라며 "투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SK가 중복상장으로 주주 이익에 뒷전인 회사라는 인식이 나오는 이유를 경영진들이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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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IPO를 찬성하는 한 주주는 종목 게시판에 "자금 조달이 막히면 솔리다임 성장도, SK하이닉스의 투자 여력도 제약받는다"며 "상장으로 돈을 끌어와 사업을 키우고 모회사 주주에게도 실질적인 이익을 돌려줄 방안을 내놓는 게 도대체 뭐가 잘못됐느냐"고 반론을 펼쳤다.
강경주 기자 memo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