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안양1번가를 찾았다. 상업시설이 빽빽하게 들어선 거리는 예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익숙한 골목과 오래된 건물들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거리의 활기였다. 주말인데도 오가는 사람이 기억 속의 안양1번가보다 확실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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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부터 익숙했던 거리다. 1999년 개봉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쉬리'도 이곳의 한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멀티플렉스가 대중화되기 전, 상영관이 하나뿐이던 단관극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극장은 문을 닫고 널찍한 호프집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안양역 일대에는 멀티플렉스가 들어섰다. 그러나 올해 초에는 롯데시네마 안양점마저 영업을 종료했다. 2019년에는 롯데백화점 안양점도 문을 닫았다. 한때 경기 남부의 대표적인 번화가였던 안양1번가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던 주요 시설들이 잇따라 사라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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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안양시가 이 일대의 복합개발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유독 관심을 끈 것도 이런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안양시는 안양역 주변 약 7만㎡를 주거·상업·업무·문화·산업 기능이 어우러진 복합거점으로 재편하기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에 나섰다. 노후 건축물을 정비하고 안양역과 지하상가, 주변 보행공간을 연결하는 구상이다. 인공지능(AI)과 정보통신기술(ICT) 등 미래산업 관련 기업과 청년창업 시설을 유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구역이나 시설별 개발 규모가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
안양역 상권의 어려움은 임대시장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3분기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 안양역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3.97%, 집합상가는 25.48%에 달했다. 당시 한국경제신문의 현장 취재에서는 대로변 1층까지 비어 있는 상가들이 소개됐다. 한때 웃돈을 줘야 들어갈 수 있었던 상가에서 권리금 없이도 임차인을 찾기 어렵다는 중개업소의 이야기도 나왔다.
최근 임대료 흐름도 좋지 않다. 올해 2분기 안양역의 통합 상가 임대가격지수는 97.46으로, 2024년 2분기(100)보다 2.54%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인덕원은 0.33%, 범계학원가는 0.68% 상승했다. 안양역 소규모 상가의 하락폭은 4.96%로 중대형 상가의 3.08%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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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모든 상업시설의 수익성이 똑같이 악화한 것은 아니다. 올해 2분기 안양역 소규모와 중대형 상가의 단위면적당 순영업소득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9.3%, 10.1% 감소했지만 집합상가는 오히려 16.8% 증가했다. 건물 유형에 따라 수익 흐름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이들 통계가 복합개발 검토구역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상업시설을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은 보여준다.
안양1번가의 쇠퇴를 건물의 노후화만으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평촌·범계 등 새로운 상권이 성장했고, 온라인 소비가 확산하면서 쇼핑을 위해 번화가를 찾는 사람들의 소비행태도 달라졌다. 어느 요인이 안양1번가의 쇠퇴에 더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백화점과 영화관이 맡았던 집객 기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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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는 그동안 상권을 되살리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해왔다. 차 없는 거리 조성과 가로환경 정비에 이어 지난해에는 약 47억원을 투입한 청년 복합문화공간 '안양청년1번가'를 개관했다. 지난 1년간 이용자는 약 2만5000명에 달한다. 청년들이 찾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과 주변 상점의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방문객이 인근 상권에서 얼마나 소비하는지 확인해야 경제적 효과를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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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도 추진했다. 안양1번가와 지하상가, 중앙시장 등 6개 상권을 연계하는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자율상권구역 지정을 추진했지만 상인과 임대인, 토지소유자들의 동의 요건과 상생협약 문제 등으로 중단됐다. 복합개발에서는 토지와 건물의 권리관계, 개발이익 배분, 기존 상인들의 재입주 문제까지 얽히게 된다.
이번 복합개발에서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새로운 상업시설의 공급 규모다.
주거·업무·문화시설이 들어서면 일상적인 소비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새롭게 유입될 인구와 소비 규모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상업시설부터 늘리면 기존 상권의 고객을 새로운 건물로 옮겨놓는 데 그칠 수도 있다. 반대로 상업시설을 지나치게 줄이면 새로 들어설 주거·업무시설의 편의성과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얼마나 짓느냐보다 무엇을, 어느 정도 공급하느냐가 중요하다.
상업용 부동산의 최유효이용은 지을 수 있는 건물을 최대한 크게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법적·물리적으로 가능한 용도 가운데 실제 시장 수요를 충족하면서 경제적으로 가장 높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활용 방안을 찾는 일이다.
상업시설이라면 임차인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고, 그들이 감당할 임대료로 공사비와 금융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임대 가능한 면적이 늘어나더라도 공실과 운영비용을 제외한 순영업소득(NOI)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자산가치가 높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주거시설 분양수익 등으로 복합개발 전체의 사업성을 확보하더라도 준공 이후 상업시설의 운영수익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상가의 활용 방안도 같은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입지가 좋고 임대수익이 안정적인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반면 장기간 공실이 이어지는 노후 건물은 주거·업무시설 등 다른 용도로 전환하거나 재개발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어느 방식이 유리한지는 현재의 임대수익과 예상 공사비, 개발기간의 금융비용, 향후 임차 수요를 비교해야 알 수 있다.
망원동 망리단길 재개발에서는 이미 형성된 골목상권을 어떻게 남길지가 문제였다. 안양1번가에서는 경쟁력을 잃어가는 원도심에 어떤 기능을 다시 채워야 할지가 관심사다. 서로 다른 상황이지만 기존 상권의 가치와 새로운 개발이 만들어낼 가치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안양1번가는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곳에서 돈을 쓰는 사람들과 소비하는 방식은 계속 달라졌다. 필자가 영화를 봤던 단관극장이 호프집으로 바뀌고, 멀티플렉스가 들어섰다가 다시 문을 닫은 과정도 그 변화의 일부다.
앞으로 마스터플랜이 구체화되면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신규 상업시설의 면적과 예상 임대료, 실제 입주할 임차인의 수요다. 개발 가능한 면적을 얼마나 채우느냐보다 그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과거 번화가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개발이라면, 지금의 안양1번가에 어떤 공간이 얼마나 필요한지부터 계산해야 한다.
천우석 한경닷컴 부장·CCIM skydol@hankyung.com
한경부동산밸류업센터
※ 본 칼럼은 작성자의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