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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시진핑의 공허한 악수, '닉슨 인 차이나'는 알고 있었다 [오페라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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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시진핑의 공허한 악수, '닉슨 인 차이나'는 알고 있었다 [오페라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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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미국 워싱턴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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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사흘간 네 차례 만났다. 미국은 전투기 비행을 포함한 군 사열과 중국의 상징인 붉은색을 활용한 국빈 만찬으로 시 주석을 환대했다. 두 정상은 친분을 과시했고 서로 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성과는 화려한 장면만큼 크지 않았다. 미·중은 관세전쟁의 휴전을 두 달 연장했지만 반도체 수출통제는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 인공지능(AI) 문제도 후속 협의를 약속하는 데 그쳤다. 희토류 공급망과 미국산 제품 구매를 둘러싼 양측 발표도 달랐다. 중국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이 '올바른 입장'을 선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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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1·2위 경제대국의 정상들이 웃으며 건배하는 동안 양국 사이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은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정상외교의 성과를 합의문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국빈 방문에는 정상회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항 영접과 군 의장대, 정상들의 악수, 공동발언, 만찬 메뉴와 건배 장면까지 모두 전 세계로 전해진다. 어느 정상이 먼저 손을 내밀었는지, 얼마나 오래 악수했는지, 어떤 표정으로 나란히 섰는지도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

    정상들은 회담장에서 상대국 지도자와 협상하지만 동시에 카메라 너머 세계의 관객을 향해 자신과 국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외교는 협상이면서 동시에 한 편의 공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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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정상외교의 '연극성'을 39년 전 이미 오페라 무대에 올린 작품이 있다.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79)의 '닉슨 인 차이나'다. 1987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72년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만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다. 고대 신화나 수백년 전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관객 상당수가 TV 뉴스로 직접 본 동시대의 정치 사건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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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문에 초연 당시 뉴욕의 일부 비평가들은 이 같은 작품들을 'CNN 오페라'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뉴스 화면에나 나올 법한 사건을 굳이 오페라 무대에 올린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닉슨 인 차이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당시 뉴스 화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2년 2월 21일 베이징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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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통령 전용기 '스피릿 오브 76'이 활주로로 들어온다. 닉슨이 비행기에서 내려 저우언라이 총리와 악수한다. 곧이어 닉슨은 첫 아리아에서 '뉴스(news)'라는 단어를 반복한다. 자신이 중국 땅을 밟은 오늘의 장면이 신문과 TV를 통해 세계사에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의식하고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닉슨의 중국 방문은 역사적인 외교적 전환이었다.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대륙을 방문했고, 마오쩌둥을 만나 회담했다. 방중 마지막에는 상하이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이 합의는 이후 양국 관계 정상화의 토대를 만들었고 냉전의 역학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존 애덤스와 대본을 쓴 앨리스 굿맨은 외교적 성과보다 그 성과가 보여지는 방식에 주목했다. 오페라 1막에는 닉슨의 비행기 착륙과 악수, 마오쩌둥과의 회담, 환영만찬이 차례로 펼쳐진다. 실제 정상방문에서 카메라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이다.

    마오와 닉슨의 대화는 매끄럽지 않다. 마오는 철학적인 경구와 농담을 던지고 닉슨은 정치적 의미를 찾으려 한다. 서로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가진 지도자들의 대화는 종종 엇나간다. 하지만 그날 밤 만찬장은 다르다. 건배사가 오가고 세계 평화와 양국 우호를 이야기한다. 카메라 앞에는 화해의 장면이 완성된다. 2막에서는 외교의 연출이 더욱 선명해진다.



    닉슨의 부인 팻 닉슨은 중국 측 안내에 따라 공장과 인민공사, 이화원과 명나라 유적지를 둘러본다. 중국이 미국 영부인과 세계 언론에 보여주고 싶은 중국의 모습이다.

    저녁에는 닉슨 부부가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이 만든 혁명발레 '홍색낭자군'을 관람한다. 무대 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을 선전하는 공연이 펼쳐지고, 그 공연을 바라보는 양국 지도자 역시 세계의 카메라 앞에 앉아 있다. 정치인이 공연을 바라보는 장면 자체가 또 하나의 정치 공연이 되는 것이다.

    닉슨 인 차이나가 흥미로운 것은 카메라가 꺼진 뒤까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3막에 들어서면 공식 일정과 의전은 끝난다. 닉슨과 팻은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마오와 장칭 역시 과거를 돌아본다. 저우언라이는 자신들이 역사 속에서 한 일이 과연 좋은 일이었는지를 자문한다.

    낮 동안 국가를 대표했던 사람들은 밤이 되자 자신의 기억과 불안을 가진 개인으로 돌아간다.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는 정상들도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역사를 만들지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닉슨 인 차이나'는 외교를 조롱하는 작품도, 닉슨의 중국 방문을 찬양하는 작품도 아니다.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뉴스가 되고, 뉴스가 다시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가 되며, 그 이미지가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로 남는지를 들여다보는 작품에 가깝다.



    2026년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이 흥미롭게 겹쳐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4년 전 닉슨과 마오가 마주 앉았을 때와 달리 오늘의 미국과 중국은 관세와 반도체, AI, 희토류와 대만 영토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강대국이다. 양국의 이해관계와 힘의 관계도 크게 달라졌다.

    그럼에도 정상외교가 연출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익숙하다. 군악대가 연주하고, 정상들은 악수하고,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건배한다. 협상장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 있어도 세계에는 일단 회담의 장면이 전달된다. 어쩌면 '닉슨 인 차이나'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이 작품은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한국 성악가들과의 인연은 깊다. 2012년 프랑스 파리 샤틀레극장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을, 테너 김재형(알프레드 김)이 마오쩌둥을 노래했다. 같은 해 샌프란시스코오페라에서는 소프라노 이혜정이 장칭 역을 맡았다.



    내년에는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인 이탈리아 라 스칼라가 '닉슨 인 차이나'를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다. 2027년 6월 26일부터 7월 13일까지 열리는 공연에서 김재형이 마오쩌둥을, 한국계 미국인 소프라노 캐슬린 김이 장칭을 맡는다.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묻는다. 정상회담은 외교 협상일까, 세계를 향한 정치 공연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조동균 기자

    100~200년 전 탄생한 명작 오페라에는 오늘의 사건사고를 보는 듯한 비극이 담겨 있습니다. 스토킹과 교제살인, 빈곤과 계급 갈등, 가짜뉴스와 권력 남용까지. <오페라 사회학>은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인간 사회의 비극과 모순을 오페라로 읽어봅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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