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중국처럼 인공지능(AI) 생태계 전 영역을 장악하기보다 첨단 패키징과 전력망 등 핵심 병목을 선점해 글로벌 AI 산업의 대체 불가능한 공급망 허브로 도약해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반도체 생산능력 확충에 그치지 않고 AI 데이터센터(AIDC)와 제조 데이터, 피지컬 AI(현실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움직이며 작업하는 AI)를 연결하는 국가 차원의 성장 플랫폼으로 대규모 투자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16일 ‘메가 프로젝트의 전략적 함의와 산업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이같이 제안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AI 산업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반도체부터 데이터센터, AI 모델, 피지컬 AI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핵심 병목이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모든 분야에서 미국·중국과 경쟁하기보다 강점을 가진 하드웨어와 제조 역량을 연결해 전략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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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에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시작된 공급 제약이 첨단 패키징으로 옮겨가고 있다. 첨단 패키징은 여러 반도체를 하나의 패키지로 연결해 성능을 높이는 기술이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활용되는 대만 TSMC의 CoWoS가 대표적이다. AI 반도체 자체를 확보하더라도 이를 고성능 제품으로 조립·연결하는 패키징 역량이 부족하면 공급을 늘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메모리 생산능력을 두 배로 확대하고 첨단 패키징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거점을 확보하는 메가 프로젝트를 이 병목과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데이터센터에서는 서버 확보보다 전력 공급과 냉각, 전력망 연결이 중요한 제약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연산 능력을 확보하려면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야 하지만, 전력기기와 송전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설비를 갖추고도 가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보고서는 AI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시설 투자로 보지 말고 국가 차원의 연산 능력을 확보하는 핵심 인프라로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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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분야에서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수집한 고품질 데이터와 정밀 부품이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했다. 피지컬 AI는 공장이나 물류 현장, 농업 등에서 로봇과 기계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실제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현실 세계의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모터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등 정밀 부품을 고도화해야 확산할 수 있다. 보고서는 한국형 제조 특화 AI 모델과 합성 데이터, 전략 부품 연구개발(R&D)을 통해 제조업 기반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고 제시했다.

보고서는 메가 프로젝트의 역할도 대규모 설비투자와 생산능력 확대에서 국가 산업의 성장 플랫폼으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구축한 AI 인프라와 생산 기반을 기존 산업의 고도화, 연구개발·실증·투자·생산 간 연결, 제조업의 AI 전환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투자가 특정 공장이나 산업단지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산업의 기술 개발과 사업화로 이어지도록 공통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메가 프로젝트와 전국 7개 권역의 성장산업을 연계해 투자 효과가 지역 산업 생태계로 확산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부권은 AI 핵심 부품과 첨단산업의 사업 규모 확대(스케일업) 거점으로, 강원권은 의료·바이오 특화 엣지 AI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엣지 AI는 데이터를 멀리 있는 대형 데이터센터로 보내지 않고 기기 가까이에서 처리하는 기술이다. 전북은 로봇 생산 기반과 농업용 피지컬 AI, 대경권은 로봇과 핵심 부품 공급망에 집중하는 구상이다.
동남권은 조선·해운과 제조업 기반을 활용해 제조 AI와 피지컬 AI를 실증하는 공간으로, 서남권은 AI 연산 인프라와 에너지 AI 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제주는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AI 기반 미래 전력 시스템의 시험장으로 활용하는 구상이다. 보고서는 메가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수요와 기술 성과를 권역별 산업에 연결해 지역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이를 국가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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