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사실을 유엔총회에서 공개하면서 이재명 정부의 대북·대러 외교 전략이 복잡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모색하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 가능성도 열어두려던 한국 정부의 구상이 예상치 못한 외교 변수와 마주했다는 진단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북한군 포로 송환 공개가 북한에 정치적·상징적 부담을 안겼으며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갈등을 장기화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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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에 보냈다고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양측이 관련 사실을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는데도 우크라이나가 이를 어겼다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이후 양국 간 외교적 긴장이 고조됐다.
미국 국가정보국 북한 담당 부조정관을 지낸 시드니 사일러 CSIS 선임고문은 이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잠재적인 장애물을 줄이려는 시점이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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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 고문은 "이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가로막을 수 있는 모든 잠재적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시점에 북한을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한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도 자극하고 싶지 않아 한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로 한국 정부의 접근 방식이 어느 정도 훼손됐다고 평가했다.
북한군 포로가 일반 탈북민과는 다른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에마 챈릿-에이버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치·안보국장은 "김정은이 느꼈을 굴욕감을 이 대통령은 잘 알고 있다"며 "특히 이들은 군인이지 일반 탈북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군 포로가 북한이 내세우는 '영웅적 서사'의 일부인 만큼 송환 사실 자체가 북한 정권에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더욱이 유엔총회라는 국제무대에서 관련 사실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챈릿-에이버리 국장은 "이 문제가 유엔총회라는 매우 주목받는 무대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공개되면서 대단히 큰 관심을 받는 사안이 됐다"며 "이 대통령이 매우 강하게 반응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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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대러시아 전략도 이번 사태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러시아와 경제 관계를 복원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차 석좌는 "한국이 이번 일에 그토록 화를 낸 이유 중 일부는 한국 역시 러시아에 대한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간접적으로 물자를 공급해 왔지만 언젠가는 러시아에서 사업을 재개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공장들을 다시 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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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안보도 한국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거론됐다. 차 석좌는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공급의 위험을 줄이려면 중앙아시아와 흑해를 통한 대체 공급망을 검토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복잡한 외교적 사정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포로 송환 공개는 북한을 겨냥한 심리전이자 러시아를 지원한 북한에 대가를 치르게 하고 우크라이나 편에 설 동맹국을 결집하려는 목적이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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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양국이 공개적인 공방을 멈추고 물밑 외교를 통해 사태를 신속히 수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일러 고문은 "이 문제를 오래 끌수록 북한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더 느낄 수 있다"며 "앞으로 며칠 안에 해결되지 않는다면 북한이 뭔가 발언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전망했다.
차 석좌도 "한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제공하고 싶어 하지만 이번 일이 전체적인 상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다투는 것은 좋은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물밑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