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사 때문에 직장생활 고충을 털어놨던 직원과의 상담을 맡은 인사담당자가 정직 처분을 받았다. 상담 과정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됐던 것. 이후 정보보안 위반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추가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회사는 상담 과정에서 중립성을 잃고 내부 인사정보를 누설했다는 징계 이유를 들었다. 징계는 정직 3개월씩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두 처분 모두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직장 고충' 상담하던 인사팀 직원 '정직 3개월'
17일 노동실무 연구모임 흥미로운연구소에 따르면 사건은 인사노무 업무를 맡은 A씨에게 한 직원이 면담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이 직원은 상사 때문에 직장생활이 힘들다면서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이전에도 퇴사를 고민했다고 했다. A씨는 정식 신고에 앞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전 상담 정도로 받아들여 대화를 녹음했다. 문제는 상담 도중 나온 발언이었다. A씨는 괴롭힘이 인정될 경우 해당 상사가 팀장 자리를 내려놔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여러 직원이 함께 신고하면 상사가 보직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반박하기 어려운 증거를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해당 상사가 과거 다른 직원과의 사건으로 견책을 받았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A씨는 당시 처분이 약했다면서 징계 이력이 있는 만큼 보직 해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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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상담 후 면담 내용을 요약해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상급자가 전체 기록을 요구하자 녹음파일과 대화록도 제출했다. A씨는 상급자에게서 "다음부터 더 중립적으로 상담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무정지뿐 아니라 징계위원회 출석을 통보받았다.
1차 징계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고충 상담에서 허용되는 조언의 범위와 상담 대상 직원이 문제를 제기한 상사의 징계 이력 공개가 쟁점이 됐다. 회사는 A씨가 중립적·객관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의무를 어긴 데다 비밀을 누설해 직무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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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징계 이력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고 주장했지만 편향된 발언과 관련 정보를 언급한 사실 자체에 관해선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경고를 받고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정직 3개월을 의결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회사는 서버 접속기록을 확인하다 A씨가 직무정지 기간 회사 클라우드에 접속한 사실을 발견했다. 접근 권한이 중단된 상태에서 내부 자료를 개인기기에 복사하거나 동기화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회사는 A씨에게 기기 제출을 요구했다. 서버 포렌식도 진행했다. A씨는 접속 사실을 인정했다.
회사는 정보보안 위반 의혹과 관련한 사건 해결 요청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A씨에게 정직 3개월을 추가했다. 첫 정직 뒤 곧바로 추가 징계가 이어진 셈이다.
노동위 "통상적 인사 업무…징계 처분 부당"
A씨는 노동위원회로 향했다.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낸 것. 노동위원회는 "회사가 어떤 파일이 개인기기에 얼마나 저장됐는지, 그중 기밀은 무엇인지 충분히 밝히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실제 유출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도 확인되지 않았다. 업무와 무관한 정보가 담긴 개인 컴퓨터를 회사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징계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 정직 처분도 부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노동위원회는 A씨의 일부 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상담 중 상당 부분은 통상적인 인사 업무에 해당한다고 선을 그었다. A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점과 무급 정직으로 입을 불이익도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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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회사가 징계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비교 대상으로 제시한 과거 정직 3개월 사례의 경우 여러 피해자를 상대로 신체적·언어적 성희롱을 반복한 사안이었다. A씨의 발언을 성희롱 사건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도 노동위원회 판단에 힘을 실었다.
노동위원회는 1차 징계의 경우 수위가 지나치게 높고 2차 징계의 경우 사유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A씨 손을 들어줬다.
보고 요구받는 상황 따라 기록 등 대응 '관건'
기업 입장에선 직원이 앞서 저지른 실수가 이후 제기되는 의혹까지 사실로 단정하는 고리가 되지 않도록 실제 행위와 증거를 분리해 징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ADVERTISEMENT
직원 입장에서도 보고를 요구받는 상황의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회사가 고충 사건을 해결하려고 기록을 받는 것인지, 보고자의 책임을 조사하려는 것인지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면담 목적과 당시 지시, 확인된 사실과 상대방의 주장, 발언 경위, 후속 조치를 함께 기록으로 남겨야 일부 발언만으로 전체 업무가 평가되는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상급자와의 관계만을 믿고 업무를 처리할 경우 향후 분쟁이 발생할 때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흥미로운연구소 소장을 맡는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대표노무사는 "상급자는 팀원에게 보고와 협조를 요구할 수 있지만 그만큼 업무의 맥락과 책임의 정도를 공정하게 평가할 책임도 진다"며 "자신에게 불리한 발언까지 포함된 기록을 제출한 직원의 협조를 고려하지 않고 일부 잘못만 크게 평가한다면 남은 직원들은 다음 보고에서 걱정이 앞설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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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직원은 관계의 변화를 읽어야 하지만 회사는 솔직하게 보고한 사람이 그 때문에 더 불리해지지 않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