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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는 누구나 보수적인 투자를 하게 될까? 정기적인 수입이 끊기고 모은 자산에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할 테니 주식 비중을 줄여 안전한 운용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상식적인 짐작을 해볼 수 있다. 금융경제학에서는 이를 인적자본의 감소에 따른 생애주기 자산배분의 변화로 표현한다. 나이가 젊을수록 앞으로 벌어들일 소득이 많은 만큼 주식 자산을 늘려 자산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채권과 같은 안전한 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생애 자산배분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인간이 늘 교과서적인 선택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재무학회(AFA)와 미국경제학회(AEA)에 보고된 대만의 연구 사례는 은퇴 후 투자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기한다. 대만 중앙연구원 경제연구소의 사이러스 추 박사 등 연구진은 2018년 대만의 공무원·교사·군인 연금 개혁 후 그 영향을 받은 이들의 자산배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추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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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대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연금 개혁이었다. 높은 소득대체율을 자랑했던 공무원·교사·군인 연금 기금의 고갈이 코앞으로 닥친 상황이었다. 반대가 극심했다. 은퇴한 공무원, 교사, 군인들이 대규모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금 개혁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와 저출생이 심화하고 있던 상황에서 연금 기금은 그대로 유지가 불가능했다. 미래의 연금 수령자뿐만 아니라 현재의 연금 수령자도 연금이 축소됐다. 75~95%에 달하는 소득대체율은 30~60%대로 대폭 삭감되기에 이르렀다.
추 박사 등 연구진은 이렇게 연금이 줄어든 은퇴 공무원과 일반 회사에서 퇴직한 개인의 자산을 비교해 보았다. 특이한 현상이 관찰됐다. 연금이 깎인 은퇴 공무원들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자산을 더 안전하게 지키고자 예금을 늘리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이들은 총자산 대비 주식 투자 비중을 10% 이상 늘렸고, 시장 평균보다 변동성이 큰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웠다. 예금 비중은 22%나 줄어든 반면, 주식 비중은 개혁 후 4년 차에 16% 이상 치솟았다. 특히 부양해야 할 자녀가 있는 가구일수록 주식 투자에 더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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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전망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안정된 이익 구간에서는 위험을 극도로 피하지만, 손실이 확정되면 이를 빠르게 만회하고자 위험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연금이 깎인 은퇴 공무원들에게 줄어든 연금은 확정 손실이었고, 이들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주식 비중을 늘렸다.
나이가 많을수록 위험 자산을 줄이는 고전적인 이론에 역행하는 선택이다. 추 박사 등 연구진은 추가로 이 투자가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도 관찰했다. 은퇴자들은 이익이 조금만 나면 조급하게 팔고, 손실이 난 종목은 원금 회복을 바라며 끝까지 손절하지 못하는 패턴을 보였다. 이들의 총자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만의 연구 사례는 정기적인 소득이 갑작스럽게 줄었을 때 개인이 합리적인 투자 행태를 보이지 않을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은퇴 후 자산관리에서 비이성적인 본전 심리에 휘둘리는 투자를 피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소득이 발생하는 경제활동기에 스스로 안전판을 구축하는 일이 우선이다.
특히 초고령사회에서는 예기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비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길어지는 수명은 높은 의료비와 간병비를 발생시켜 정기적인 노후 소득을 위협할 수 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에 기대는 데 그치지 않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라는 사적 연금을 통해 나를 지킬 수 있는 현금흐름을 준비해야 할 이유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보수적으로 운용돼야 할 자금을 가장 위험한 길로 내몰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쫓기는 돈으로는 현명한 투자를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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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 투자와 연금센터 오현민 수석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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