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이 하루 만에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5000억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던지며 이탈했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반도체 호황을 믿고 한국 증시에 베팅해온 외국인 투자자의 경계심이 매도 폭탄으로 터졌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국내 증시를 지탱해온 반도체 랠리가 종언을 고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13일 인공지능(AI) 기반 투자정보 플랫폼 에픽AI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날보다 348.89포인트(5.46%) 내린 6035.35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올해 6월19일 기록한 사상 최고점(장중 9385.59)과 비교하면 무려 36% 낮은 수준이다. 또 이날 하락률은 지난 8월19일(-5.80%) 이후 가장 높다. 지수는 전장 대비 198.16포인트(3.10%) 내린 6186.08로 개장해 낙폭을 키운 채 6000선 밑으로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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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초반 한때 코스피 시장에는 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는 지난 8월 코스피 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지 약 2달 만이다. 코스피는 지난 7~8월 급락장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아울러 코스피가 장중 6000선 아래로 밀린 것은 지난 7월31일 이후 약 10주 만이다. 코스피 시가총액도 5000조원 밑으로 쪼그라들었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이날 19.15% 폭등해 48.53으로 껑충 뛰었다. 장중 한때 51.57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달 들어 VKOSPI는 40선 초반에서 30선 중후반까지 연일 내렸지만, 전날 다시 40선에 오른 데 이어 이날 큰 폭으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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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이날까지 6거래일 연속 '팔자'를 이어가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정규장 마감 시점 외국인은 4조5259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 역시 지난 7월28일(4조5261억원) 이후 최대 외국인 순매도 규모다. 반면 개인과 기관은 각각 2조2271억원, 1조6902억원 매수 우위로 지수의 추가 하락을 막았다.
이날 코스피 폭락은 CXMT가 D램 메모리 기술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뤘다면서 올해 안에 이를 이용한 차세대 서버용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영향이 가장 크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차오칸위 CXMT 사장은 지난 주말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산업 콘퍼런스에서 차세대 D램 설계 기술인 '4F²'를 적용한 데이터센터 서버용 제품을 올해 말 이전에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4F²는 기존 D램의 대표적인 설계 방식인 6F²보다 메모리 셀의 면적을 줄여 집적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수년간 개발해 온 차세대 설계 방식으로, 창신메모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중국 업체가 한국의 주요 경쟁사보다 먼저 새로운 구조를 구현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모닝스타의 징제위 애널리스트는 "창신메모리가 4F² 구조를 성공적으로, 경쟁사보다 먼저 D램 생산에 적용한다면 경쟁력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CXMT의 발표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주 매도세를 촉발한 요인이다. 전날 뉴욕증시에서 인텔(-3.20%), 마이크론(-3.88%), 브로드컴(-1.88%) 등이 내렸고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도 4.02% 하락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2.67%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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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코스피에서도 주요 메모리 업체 주가가 급락했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6.59% 내린 23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고, 주가는 지난 5거래일간 총 4만4000원(16%) 하락했다. SK하이닉스는 8.54% 급락한 146만8000원에 장을 마쳤다. 지난 5거래일간 총 39만8000원(22%)이 증발했다. 올해 반도체주 활황 당시 한때 각각 2000조원을 넘기기도 했던 두 종목의 시가총액은 이날 1000조원대를 가리키며 장을 마감했다.
증시 회복의 핵심은 외국인 수급이라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관건은 외국인 매도 자체보다 이를 상쇄해줄 국내 주식 수요 기반이 있느냐는 점"이라고 말했다. 수급이 취약한 까닭에 외국인을 중심으로 매물이 나올 때마다 국내 증시가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 투자자들로 하여금 국장을 더욱 외면하게 하는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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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도 "같은 매도에도 지수가 무너진 이유는 자사주 완충의 소멸"이라면서 "8∼9월 외국인은 31조7000억원어치를 팔았지만 코스피는 3.7% 올랐는데 반도체 2사가 하루 1조6100억원어치를 받아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그동안 시장은 AI 메모리의 폭발적 성장과 실적 개선에 주목했지만 이제는 그 이익을 얼마나 오래 지킬 수 있을지 냉정하게 따지기 시작했다"며 "외국인이 4조5000억원 넘는 주식을 한꺼번에 내다 판 것은 한국 증시의 취약한 수급 구조와 반도체 편중 리스크가 동시에 드러난 결과"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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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실적이 좋을 때는 가려진 구조적 문제가 주가가 흔들리자 한꺼번에 불거지고 있다"며 "반도체가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던 시대가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인지, 시장 전체가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memo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