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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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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정
하늘은
제일 넓은 땅을 가지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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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마음대로 올렸다
마음대로 철거한다
나는 아직
발 하나 놓을 땅도 없는데
저 부자는 오늘도
빈 땅을 놀리고 있다
[태헌의 한역]
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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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擁?區不納稅(천옹환구불납세)
浮雲隨意築還捐(부운수의축환연)
我無寸土堪投足(아무촌토감투족)
富者猶閑萬里田(부자유한만리전)
[주석]
* 天(천) : 하늘.
* 擁(옹) : 끼고 있다, 차지하다, 소유하다. / ?區(환구) : 천하, 온 세상. 원시의 ‘제일 넓은 땅’을 옮긴 말이다. 이 시에서는 사실상 하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 不納稅(불납세) : 세금을 내지 않다.
* 浮雲(부운) : 뜬구름. 원시의 ‘구름’을 두 글자의 한자로 나타낸 말이다. / 隨意(수의) : 뜻대로, 마음대로. / 築(축) : 쌓다, 집을 짓다. 건물을 올린다고 한 원시의 표현을 살짝 변형시켜 구름을 하늘에 쌓는 것으로 나타낸 시어(詩語)이다. / 還(환) : 다시, 도로. / 捐(연) : 덜어내다, 내버리다, 없애다. 원시의 ‘철거한다’를 옮긴 말이다.
* 아무(我無) : 나는 ~이 없다, 나에게는 ~이 없다. / 寸土(촌토) : 한 치의 땅. 극히 좁은 땅을 이른 말이다. / 堪(감) : ~을 할 만하다. / 投足(투족) : 발을 들여놓다. ※ 이 구절은 “나는 발을 들여놓을 만한 한 치의 땅도 없다.”는 뜻이다.
* 富者(부자) : 부자. 이 시에서는 하늘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원시의 ‘저’는 글자가 넘쳐 한역을 생략하였다. / 猶(유) : 여전히. 원시의 ‘오늘도’를 옮긴 말이다. / 閑(한) : 한가롭게 하다, 놀리다. 여기서는 땅을 쓰지 않고 비워 둔다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 萬里田(만리전) : 만 리에 걸친 밭. 광대한 토지를 과장하여 이른 말이다. 원시의 ‘빈 땅’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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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역의 직역]
하늘
하늘은 온 세상 차지하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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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마음대로 쌓았다가
다시 내버린다
나는 발을 들여놓을
한 치 땅도 없는데
저 부자는 여전히
만 리의 밭을 놀리고 있다
[한역노트]
세금 내지 않는 부자
역자는 이 짧은 시를 처음 읽고 한참 동안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아홉 줄밖에 되지 않는 시가 하루치의 뉴스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제일 넓은 땅을 가지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니! 시인은 눈을 들어 구름을 보다가 문득 자기 발밑을 내려다본 모양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발 하나 놓을 만한 자기 땅이 없었다.
시는 처음에는 익살처럼 읽힌다. 하늘을 부자로 세워 놓고 세금 한 푼 안 낸다고 투덜대는 말투가 바로 그렇다. 그런데 마지막 연에 이르면 웃음이 목에 걸린다. “저 부자는 오늘도 빈 땅을 놀리고 있다.”는 이 한 문장에서 하늘은 갑자기 우리 사회의 어떤 얼굴들과 포개진다.
역자는 이 시를 한 수의 칠언절구로 옮겼다. 첫 구 “天擁?區不納稅(천옹환구불납세)”의 ‘환구(?區)’는 온 세상, 곧 하늘 전체를 뜻한다. 원시의 ‘제일 넓은 땅’을 두 글자의 한자로는 도저히 옮길 재간이 없어 부득이 취한 시어가 바로 이 ‘환구’였다. 하늘은 하늘의 일부가 아니라 하늘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차지하다’를 옮기면서 ‘옹유(擁有)하다’는 뜻의 ‘옹(擁)’을 고르게 되었다.
둘째 구 “浮雲隨意築還捐(부운수의축환연)”에서는 ‘연(捐)’을 고르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원시의 ‘철거한다’는 건설 현장의 사무적인 말을 한문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적지 않은 고민 끝에 마침내 ‘덜어내다, 내버리다’의 뜻인 ‘연(捐)’을 택하게 되었다. 구름을 쌓았다가 미련 없이 거두는 하늘의 솜씨가 여기서 살아난다. 원하는 때에 짓고 원하는 때에 허물어 버리는 영낙없는 부자의 모습이다.
셋째 구 “我無寸土堪投足(아무촌토감투족)”의 ‘촌토(寸土)’는 손가락 한 마디만한 땅이다. 원시의 “발 하나 놓을 땅”의 ‘땅’을 비유적으로 옮겨본 것이다. 그 ‘한 치’는 마지막 구 “富者猶閒萬里田(부자유한만리전)”의 ‘만 리의 밭’과 마주 선다. 한 치와 만 리 사이의 ‘거리’가 곧 이 시가 겨누는 자리이다.
이 ‘거리’를 오늘의 현실에서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집값이 오르내릴 때마다 온 나라가 들썩이고, 부동산 세금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해마다 되풀이된다. 세금이 과하다는 사람과 부족하다는 사람이 저마다 이유를 들지만, 좁은 원룸에서 월세 걱정으로 잠을 설치는 청년들은 그 논쟁의 어느 편에도 서 있지 못하다. 큰 빚을 내어 집을 산 이들의 불안도 깊고, 전세 보증금을 떼여 삶의 바닥이 꺼진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 땅의 셈법은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오른 값은 일찌감치 누군가의 자산이 되지만, 오른 값에 밀려난 사람들의 고통은 어느 장부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 옳으냐를 따지기 전에, 발 하나 놓을 땅이 없다는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비유가 아니라 절박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먼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시인은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저 부자’는 하늘 아래의 쓰지도 않을 땅을 오래 쥐고 있는 이, 사람 없이 비어 있는 건물이며 필지들과 겹친다. 원망을 하늘에 던지니 화살이 아니라 물음이 되어 돌아온다. 땅은 누구의 것이며, 놀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런데 하늘은 정말 아무 값도 치르지 않는 부자일까? 지구 저궤도에는 통신위성이 수천 기씩 올라가고, 여러 나라와 기업들이 저마다 궤도를 차지하려고 다툰다. 항로와 주파수와 공역(空域)은 국가와 기업이 값을 매기고 나누어 쓰는 자원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공유지였던 하늘이 조금씩 선점의 대상이 되어 가는 것이다. ‘세금 내지 않는 하늘’은 어느새 ‘값이 매겨지는 하늘’로 변해 가고 있다.
더 무거운 사실도 있다. 하늘은 세금을 내지 않지만,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청구서를 대신 받아 든다. 공장과 자동차가 내뿜은 탄소는 하늘에 쌓였다가 기후 위기로 되돌아온다. 봄마다 미세먼지에 가려지는 하늘을 우리는 이제 놀라지도 않고 올려다본다. 하늘이 지불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늘에게 갚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이라는 부자는 언제나 인색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너무 염치없이 그 곳간을 함부로 써 왔을 뿐이다.
그래도 발 디딜 땅조차 없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면 하늘은 거기에 있다. 하늘은 등기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월세도 보증금도 요구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의 머리 위에도, 가진 이의 지붕 위에도 똑같은 구름이 똑같은 그늘을 드리운다. 시인의 투정 속에는 그런 하늘이 있어서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고백이 숨어 있지 않을까 싶다.
옛 시인 두보(杜甫)는 자기 초가집 지붕이 가을바람에 파괴되었어도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이 큰 집을 얻어 웃을 날을 꿈꾸었다. 제 몸 눕힐 곳이 없으면서도 남의 잠자리를 걱정하던 그 마음이 바로 한시(漢詩)의 오랜 뿌리이다. 땅 없는 설움을 하늘에 하소연하는 방식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형식은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은 그대로여서, 이 현대시는 옛 가락 속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다.
빈 땅을 놀리는 부자에게 세금을 물릴 것인가, 아니면 땅 없는 이들에게 그 땅을 나누어줄 것인가. 시는 끝내 답을 내놓지 않는다. 하늘에게 세금을 물리자고도, 땅 없는 ‘나’에게 땅을 달라고도 하지 않고 그저 ‘놀리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역자는 하늘이 가르치는 것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은 가장 넓은 것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가두지 않는다. 구름을 올리고 거두는 것은 소유의 방식이 아니라 흐름의 방식이며, 그래서 비가 되면 모두의 논밭에 내리고 볕이 되면 모두의 마당에 든다. 땅 위의 부자들이 하늘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이 흐름일 것이다. 쥐고 있는 것을 놀리지 않고 나누어 쓰는 지혜, 빈 땅을 사람들의 온기로 채우는 그 일이다. 하늘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넉넉함에 가깝다. 그 넉넉함을 배우는 일이 어쩌면 사람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일 것이다.
역자는 4연 9행으로 된 원시를 한 수의 칠언절구로 한역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捐(연)’과 ‘田(전)’이다.
2026. 10. 13.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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