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도로를 보다 보면 가끔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자동차는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자동차의 이름은 오히려 줄어든 것 같습니다.
한때 자동차 잡지를 펼치면 참 많은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미국에는 폰티악과 올즈모빌, 머큐리가 있었습니다. 스웨덴에는 사브가 있었고 영국에는 로버가 있었습니다. 푸조와 시트로엥 같은 프랑스 차도 지금보다 자주 보였습니다. 일본 차도 도요타와 혼다뿐 아니라 닛산과 인피니티가 한국 도로를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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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차는 사브였습니다. 한때 제 드림카였죠. 독특한 차체에 터보 엔진을 얹은 사브는 제 눈에는 자동차라기보다 북유럽에서 날아온 전투기처럼 보였습니다. 사브는 1978년 99 터보를 내놓을 만큼 터보 기술을 일찍 받아들였고 계기판에도 항공기에서 영감을 받은 ‘블랙 패널’을 적용했습니다.
재규어도 그랬습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XJ가 보여준 우아함은 쉽게 흉내 내기 어려웠습니다. 낮게 깔린 차체와 긴 보닛, 둥근 헤드램프와 가죽·우드로 꾸민 실내까지. 독일 고급차와는 전혀 다른 자동차였습니다. 지금도 오래된 XJ가 클래식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을 보면 그 디자인을 좋아했던 사람이 저만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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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자동차들은 지금보다 불완전했을지 몰라도 성격은 선명했습니다. 누군가는 열광했고 누군가는 싫어했습니다. 효율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다양했습니다.
그런 차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GM은 올즈모빌과 폰티악을 없앴고 포드는 머큐리를 접었습니다. 사브는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재규어라는 이름은 남아 있지만 우리가 알던 모습은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닛산과 인피니티가 철수했고 시트로엥이나 푸조의 신차를 도로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아졌습니다.
그 많던 자동차는 어디로 간 걸까요. 가장 단순한 답은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규모가 잔인하게 작동하는 산업입니다. 플랫폼과 엔진, 안전기술을 개발하고 환경 규제를 맞추는 데 막대한 돈이 듭니다. 이제는 배터리와 전장, 소프트웨어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렇게 만든 차를 충분히 많이 팔지 못하면 투자비를 회수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차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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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작은 회사들은 사라지거나 합쳐졌고 살아남은 브랜드들도 더 큰 지붕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스텔란티스에는 푸조와 시트로엥, 피아트와 크라이슬러, 지프와 알파로메오, 마세라티 등이 함께 있습니다. 폭스바겐그룹에도 폭스바겐과 아우디, 스코다, 포르쉐 등이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은 브랜드조차 점점 혼자 자동차를 만들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얼마 전 말레이시아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습니다. 길에 처음 보는 자동차가 계속 지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차인가 싶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페로두아와 프로톤이라는 말레이시아 자동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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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이들이 작은 틈새 브랜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2025년 페로두아는 말레이시아 시장의 43.9%, 프로톤은 19.4%를 차지했습니다. 둘을 합치면 60%가 넘습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브랜드를 줄이고 서로 합치는 시대에 말레이시아에는 여전히 자기 자동차가 있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베트남에는 빈패스트가 있고 튀르키예에는 토그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를 뿐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지금도 자기 이름을 붙인 자동차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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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자기 자동차를 만들까요. 이미 좋은 차는 세상에 넘칩니다. 수입해 타면 됩니다. 그래도 많은 나라가 자동차산업을 갖고 싶어 합니다. 자동차 한 대에는 철강과 화학, 유리와 타이어, 기계와 전자, 반도체와 배터리, 소프트웨어까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만든다는 것은 공장 하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제조업 능력을 하나의 제품에 모으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자동차를 만든다고 모두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가장 극단적인 실험이 벌어지는 곳이 중국입니다. 2025년 기준 중국에는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브랜드가 129개나 있었습니다. 컨설팅회사 알릭스파트너스는 이 가운데 2030년까지 재무적으로 살아남을 브랜드가 15개 정도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129개에서 15개.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숫자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이름조차 낯선 중국 브랜드 가운데 누군가는 10년 뒤 세계의 도로를 달리겠지만 대부분은 사라질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좋은 기술과 아름다운 차, 열광적인 팬을 가졌어도 살아남지 못한 회사는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자동차산업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한국 역시 해외 기술을 빌려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후발주자였습니다. 그중 살아남은 현대차그룹은 2025년 판매량 기준 세계 3위 자동차 제조사까지 올라갔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순위보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자동차 회사 하나를 수십 년 동안 버티게 하고 세계에서 경쟁할 수준까지 키우려면 그 뒤의 부품과 철강, 타이어와 전자 산업도 함께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낯선 자동차를 바라보다 사브와 재규어를 떠올리고 다시 한국 자동차를 생각한 이유입니다.
그 많던 자동차는 어디로 갔을까. 어떤 이름은 사라졌고 어떤 이름은 더 큰 회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름은 남았지만 전혀 다른 자동차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는 지금도 새로운 이름들이 태어납니다. 자동차산업의 역사는 어쩌면 기술의 역사이기 전에 탄생과 멸종의 역사인지도 모릅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자기 이름을 오래 지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워 보이기만 합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