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영화 '암살자(들)'을 두고 "영화적 상상력과 창작의 자유 뒤에 숨은 고의적 지적 사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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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범 한류연구소장은 7일 한경닷컴에 보내온 글을 통해 영화가 제기한 '권력 내부 배후설'을 반박했다. 한 소장은 러시아 외무성 산하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에서 수학했으며, 본인 설명에 따르면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러시아 국빈 방문 당시 외부 발탁 근접 경호 통역관으로 청와대 경호팀과 함께 일했다.
◆ "1974년은 일본도 권총 들고 비행기 타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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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장은 먼저 영화가 1974년이라는 시대적 맥락을 지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4년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조차 동네 파출소가 털려 실탄과 권총을 빼앗기고, 손쉽게 여권을 위조해 실탄이 든 권총을 품고 비행기에 무사히 오를 수 있었던 미개와 야만의 시대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세광은 1974년 7월 17일 밤 오사카시 고즈파출소 창문을 깨고 들어가 권총 2자루와 실탄을 훔쳤다. 그는 타인 명의로 발급받은 일본 여권으로 출국했으며, 훔친 권총을 트랜지스터 라디오 내부를 개조해 숨겨 김포공항 보안 검색을 통과해 입국했다.
한 소장은 "하물며 당시 1인당 GDP가 일본의 8분의 1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의 보안과 감식 능력이 정교했을 리 만무한데, 영화는 이 기관들을 007 영화에나 나올 법한 전지전능한 비밀 조직으로 그리고 있다"며 이를 역사 왜곡으로 규정했다.
◆ "생중계 행사장을 택할 이유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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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 공작의 기본 원칙을 들어 영화 속 암살 설정의 비현실성도 꼬집었다. 한 소장은 "거대 권력이 배후라면서 정작 암살범에게 행사장 출입 비표 하나 주지 못해 1층 맨 뒷줄에 앉혔다는 설정은 블랙코미디"라며 "정상적인 정보기관이라면 성공 확률 99%에 이르는 소록도 등 단독 외부 일정을 노리지, 오발탄에 대통령이 죽을 위험까지 감수하며 전국에 생중계되는 행사장을 택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 "자작극이라면 신직수·박종규 왜 몰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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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후 권력 핵심부의 행보도 근거로 들었다. 한 소장은 "영부인 암살이 정권 차원의 공작이었다면 실행자인 신직수 중앙정보부장과 박종규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치명적 약점을 쥐고 뒤에서 실권을 휘둘렀어야 한다"며 "그러나 박종규는 직후 물러났고 신직수 역시 2년 뒤 경질되어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이는 범죄 인과관계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사건의 배후로는 김일성을 지목했다. 미군 개입과 보복을 우려한 김일성이 문세광에게 일본제 무기와 타인 명의 여권을 쥐여주는 방식으로 북한의 흔적을 지웠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기밀 해제 보고서에서 문세광 사건을 북한의 대남 암살 공작 사례로 명시했다고 주장했다. CIA가 1983년 아웅산 테러 직후 작성해 2010년 공개한 보고서에는 문세광 사건이 과거 대통령 암살 시도 사례로 언급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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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완벽주의자 감독이 당시 정보기관의 허술함과 암살 동선의 모순을 몰랐을 리 없다"며 "데이터와 논리를 앞세우는 실용적인 2030세대의 팩트체크 앞에서 이 같은 선전선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제작진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하지 않아"
논란이 확산되자 제작진은 지난달 28일 공식 입장을 내고 이 영화가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이며,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확정하거나 기존 사실을 부정·왜곡하려는 의도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지난달 23일 개봉 이후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 휩싸였다. 당시 한국 특별수사본부는 북한과 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의 범행으로 결론 냈지만, 일본 수사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화는 배후를 특정하지 않은 열린 결말로 끝나 일부 관객과 정치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당시 정권의 배후 가능성을 암시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