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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부친의 마지막 당부를 지킬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부친을 괴롭혀 온 동생 B가 거액의 유류분 반환을 청구했지만, 이제는 패륜적 상속인의 상속권을 상실시킬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도록 개정된 법이 시행된 지 이미 6개월이 지나 청구기간을 놓쳤다는 것이다.
부친은 작은 회사를 일으켜 주식 가치가 2000억원에 이르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A는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설립 초기부터 부친과 함께 일하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반면 B는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회사가 자리를 잡고 나서야 뒤늦게 합류했다. 그런데 B는 회사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부친과 A를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하며 경영권을 차지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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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에 탈세 의혹을 제보하고, 부친을 상대로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B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었고 회사의 성장세도 꺾였다. 무엇보다 부친은 신체적·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어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끝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 뒤에도 B는 집에 혼자 있던 부친에게 회사 지분을 넘기라며 식칼로 위협하는가 하면, 사업 자금을 주지 않는다며 심한 폭언을 퍼부었다.
부친은 당초 회사 주식을 A와 B에게 균등하게 물려줘 형제가 함께 회사를 운영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년간 이어진 B의 행동에 마음을 바꿔 주식 전부를 A에게 유증하는 유언장을 작성했고, 2025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자신의 재산이 절대 B에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A에게 신신당부했다.
동생한테 날아온 유류분반환청구 소장

A가 장례를 치르고 상속세 신고를 마친 뒤 회사를 재정비하던 중, B가 제기한 유류분반환청구 소장이 송달됐다. B는 A가 유증받은 주식 전체의 상속개시 당시 가액을 2000억원으로 평가하고, 그중 자신의 유류분에 해당하는 500억원 상당의 주식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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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유류분 상실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2조 제1호부터 제3호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2020헌가4 등).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신체적·정신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 행위를 한 상속인에게까지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는 것이다.
입법자는 별도의 유류분 상실사유를 두는 대신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를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제도는 2024년 민법 개정(이른바 ‘구하라법’)으로 직계존속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됐고, 2026년 3월 17일부터는 직계비속과 배우자 등에게도 적용되도록 확대됐다. 상속인의 지위를 잃으면 유류분도 함께 잃게 되므로, 상속권 상실을 통해 유류분 상실의 효과를 거두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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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민법에 따르면 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피상속인 등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를 하거나 그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은 행위의 경위와 정도, 당사자들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 등을 종합해 인용 여부를 판단한다. 상속권 상실 선고가 확정되면 상속개시 시점으로 소급해 상속권을 잃고, 유류분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B가 부친을 흉기로 위협하고 반복적으로 폭언과 압박을 가한 행위는 상속권 상실사유에 해당하는지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다. 그러나 그런 사정만으로 B의 유류분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개정법에 따른 청구를 거쳐 가정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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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간이다. 민법은 피상속인이 공정증서 유언으로 상속권 상실의 의사를 남긴 경우에는 유언집행자가, 그런 유언이 없는 경우에는 공동상속인이 상속권 상실을 청구하도록 정하고 있다. 공동상속인은 상속권 상실사유가 있는 사람이 상속인이 됐음을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
개정법은 2024년 4월 25일 이후 개시된 상속으로서 개정법 시행 전에 상실사유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었던 경우에도 적용된다. 다만 상실사유가 있는 사람이 상속인이 됐음을 법 시행 전에 이미 알고 있던 공동상속인은 시행일인 2026년 3월 17일부터 6개월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 2025년에 부친을 여읜 A의 청구기간은 올해 9월 중순으로 이미 끝났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공정증서 유언으로 상속권 상실의 의사를 밝혀 뒀다면 유언집행자가 청구하는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례처럼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권 상실 제도가 마련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부친에게 그런 준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식을 모두 A에게 유증한다는 유언이나 B에게 재산을 주지 말라는 마지막 당부 만으로는 법이 요구하는 상속권 상실의 공정증서 유언을 갖췄다고 볼 수도 없다.
결국 A가 B의 유류분 상실사유를 주장하려면, B가 유류분을 청구할지조차 알 수 없던 시점에 개정법을 확인하고 시행일부터 6개월 안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했어야 했다. 아직 제기되지도 않은 유류분 분쟁에 대비해 다른 상속인의 지위를 박탈하는 소송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유류분반환청구권은 상속개시와 반환해야 할 증여·유증 사실을 안 때부터 1년, 상속개시 때부터 10년 안에 행사하면 되지만, 상속권 상실은 상대방이 상속인이 됐음을 안 날부터 6개월 안에 청구해야 한다. 상속권 상실 청구기간이 지난 뒤 유류분반환청구 소장을 받았다면, 유류분 상실사유를 주장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시점에는 이미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기회가 사라진 셈이다.
효과 측면에서도 간극 있다

효과 측면에서도 간극이 있다. 상속권 상실은 유류분뿐 아니라 상속인으로서의 지위 전부를 박탈하는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예컨대 상속재산을 일부 분할받았지만 유류분에 미치지 못해 유류분반환을 청구한 상속인에게 상속권 상실이 선고되면, 유류분 청구가 기각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받은 상속재산까지 반환해야 한다. 유류분을 인정하기는 부당하지만 상속권 전부를 박탈하기에는 지나친 사안이라면 법원으로서는 인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상속권 상실 제도가 유류분 상실사유의 역할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개선을 주문한 것은 패륜적 상속인에게도 예외 없이 유류분을 보장하는 구조였다. 그 취지를 온전히 살리려면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에서 상실사유를 직접 판단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유류분 상실 제도를 두거나, 적어도 상속권 상실 청구기간이 지난 뒤 유류분반환청구를 받은 경우에는 일정 기간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 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도가 보완되기 전까지는, 유류분 분쟁이 예상되는 상속인이라면 피상속인이 사망하자마자 상속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상속권 상실 청구 여부부터 따져보고, 상속권 상실사유에 해당할 만한 행위가 있었다면 관련 자료를 서둘러 확보하고 6개월 안에 상속권 상실 청구 여부를 결정해야만 한다.
상속인에게 이러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피상속인은 공정증서 유언으로 상속권 상실의 의사를 명확히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추후 진행될 소송을 대비해 필요한 자료까지 미리 준비해 둔다면, 상속권 상실의 의사가 관철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