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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봉의 호모 인베스티쿠스] 고금리 시대, 기다림의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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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봉의 호모 인베스티쿠스] 고금리 시대, 기다림의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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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는 흔히 돈의 가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돈을 가진 사람에게 금리는 조금 다른 얼굴을 갖는다. 기다림의 가격이다. 지금 쓰지 않고 들고 있을 때 얼마를 받을 수 있는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얼마나 벌 수 있는가. 금리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은 이 단순한 계산을 다시 한다.

    1965년 가을, 정부는 은행 정기예금 금리를 15%에서 26.4%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이른바 ‘금리 현실화’ 조치였다. 당시 은행은 돈을 모으는 곳이라기보다 돈이 빠져나가는 곳에 가까웠다. 높은 물가와 낮은 예금금리 사이에서 사람들은 은행 대신 계와 사채를 찾았다. 정부는 장롱과 골목에 숨은 자금을 은행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금리라는 가장 강력한 미끼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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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4%라는 숫자는 지금 감각으로는 다른 행성의 수치처럼 보인다. 1년을 기다리면 원금의 4분의 1 이상을 보상으로 돌려받는 구조였다. 은행에 돈을 맡겨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다림’이 가장 탁월한 투자가 된 셈이다. 돈의 행보는 재빨랐다. 금리 현실화 이후 저축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1965년 국내총생산의 약 15% 수준이던 은행 예금은 1969년 30% 수준까지 불어났다.

    장롱 속 자금은 은행으로 모였고, 그 돈은 다시 경제개발을 위한 기간산업 대출로 흘러갔다. 금리표의 숫자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국가 자금의 행선지와 지도가 바뀌었다. 그러나 돈의 변심 또한 그만큼 빨랐다. 다시 물가가 뛰고 정부가 금리를 인위적으로 억누르자 자금은 서둘러 은행 담장을 넘어 사채시장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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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8월 3일 발표된 ‘8·3 사채동결조치’는 그 파열음의 산물이었다. 기업들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명동 사채시장으로 내몰렸다. 공식 금리와 시장 거래 가격 사이의 거대한 괴리는 결국 국가의 강제 개입이라는 극단적 처방으로 이어졌다. 돈의 흐름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콘크리트 차단벽을 세워 억누른 것이다.

    금리는 돈의 물꼬다. 물은 낮은 곳을 찾지만 돈은 언제나 높은 금리를 향한다. 그 물길을 인위적으로 막아서면 반드시 범람하거나 우회로를 찾는다.


    1997년 겨울, 외환위기가 터지자 주가는 주저앉고 기업들은 쓰러졌다. 외환 유출을 막기 위해 단행된 IMF의 혹독한 고금리 처방 속에 콜금리는 단숨에 25%를 넘어섰고, 시장금리는 20%대 중후반까지 치솟았다. 돈을 쥔 사람에게 주식은 더 이상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당시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17~19%에 달했다. 주가가 반 토막 나는 난세에 무위험 20% 이자가 주어진다면 셈법은 명확해진다. 은행에 돈을 묻어두고 시간을 견디는 일 자체가 가장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투자 결단이었다.

    최근 예테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동안 예금은 자산 증식과 무관한 ‘안전 금고’ 취급을 받았다. 주식과 부동산, 가상자산이 천문학적 수익률을 자랑하던 시절 예금의 보폭은 지나치게 느려 보였다. 그러나 금리 환경이 바뀌자 느림에도 다시 정당한 값이 매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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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킹통장’이라는 조어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돈을 굴리지 않고 잠시 세워두는 주차장일 뿐인데도 금융회사들은 앞다퉈 자금을 유치하려 든다. 급격한 금리 인상기엔 초단기 파킹통장에 파격적인 고금리 혜택을 얹어주는 상품까지 잇달아 등장했다.

    금리의 시대, 돈은 주인의 조급증을 따르지 않는다. 기다리는 시간에 가장 후한 대가를 얹어주는 곳으로 묵묵히 흘러갈 뿐이다. 투자자가 익혀야 할 것은 빠르게 움직이는 법만이 아니다. 멈춰 서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정당한 값을 받아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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