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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응급실 뺑뺑이' 시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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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응급실 뺑뺑이' 시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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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 스스로 전화해 병원을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경증이다.” 2024년 전쟁 같던 의정갈등 사태를 겪은 뒤 의료계에서 유행어처럼 회자되는 말이다.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프면 무조건 응급실로 향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로 이렇게 말했다. 의료계에선 이내 “경·중증 판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해당 발언을 한 고위 공무원의 사과로 상황은 일단락됐다.

    2년이 지난 요즘, 이 말은 더 빈번하게 활용되고 있다.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병원 종사자나 정부 관계자 등의 입을 통해서다. 주로 생사를 오가는 위중한 상황이 아닌데 뺑뺑이라는 표현은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용도로 쓰인다. “응급실에 걸어갈 정도라면 중증은 아니다” “진짜 위독한 환자였다면 어느 병원에서건 치료했을 것”이라는 말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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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가족을 치료해줄 병원을 찾아 발을 동동 구르며 구급차에 올라본 사람들은 이 말 한마디의 무게를 안다. 교통사고로 뼈가 으스러져 의식이 없는 환자조차 수차례 응급실에서 퇴짜를 맞는 게 일상이 됐다. 고열로 몸을 못 가누는 아이,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는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운 좋게 비어 있는 응급실을 바로 찾지 못한다면 병원에서 받아줄 때까지 기약 없이 도로를 떠돌아야 한다. 이 시간 ‘가족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절망감은 온전히 보호자의 몫이다. ‘화성에서 온 의사’와 ‘금성에서 온 환자’는 이렇게 또다시 서로의 거리만 확인하게 된다.

    ‘뺑뺑이’란 용어가 중·고등학교 배정보다 응급실에 더 어울리는 세상이 됐다. 지난해 1년간 병원 응급실 등에서 119구급대로 치료 시스템이 온전치 않다고 메시지를 보낸 건수는 12만 건에 육박했다. 매일 병원에서 보낸 300여 건의 진료 제한 공지가 응급의료 알림창을 가득 메웠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인력 부족 탓이었다. ‘아이를 받아줄 산과 교수가 학회 참석차 자리를 비워서’ ‘외과 의사가 전날 당직으로 연속 근무를 설 수 없어서’ 등 이유는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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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 시간조차 둘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돌아가는 병원 근무 스케줄이 원인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던 의정갈등 사태는 사실상 젊은 의사들의 초과근무 거부 선언이 됐다. 남은 노동은 교수들의 몫이다. 후배 의사조차 구하기 힘든 몇몇 필수 진료과 교수는 외래, 수술, 당직으로 이어지는 스케줄을 혼자 소화한다. 늦은 밤 응급실에서 수시로 울리는 콜을 받으며 배후진료까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여유 인력을 채용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인건비를 두둑이 보상해야 하지만 곳간이 비어가는 건강보험 재정은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의료계에선 잘못 설계된 제도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응급의료법에 따라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가 정부 지원금을 계속 받으려면 응급실에 환자를 오래 둬선 안 된다. 24시간 넘게 머문 응급실 환자 비율을 연간 5% 미만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른바 ‘5%룰’이다. 응급실과 일반병동, 중환자실은 모두 치료를 위한 장소다. 의사가 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5%룰은 응급실을 다른 공간으로 만들었다. 병원 내 다른 치료 장소로 빠르게 이동하지 못할 환자라면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또 다른 책임이 생긴 것이다. 치료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면 환자를 받지 않는 게 병원 경영엔 더 유리하다. 의사들이 규제 탓에 응급실 뺑뺑이가 고착화하고 있다고 토로하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대학병원 정형외과 환자를 비교적 가벼운 질환으로 분류한 중증도 기준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형외과 수술을 많이 하면 대학병원 지원금이 줄게 되자 뼈에 암이 생긴 골종양, 사고 등으로 전신 부상을 입은 다발성 골절 환자 등을 보는 의사까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119구급대가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바로 지정할 수 있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국회 등에선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세부 사항이 바뀌지 않으면 사태는 더 악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국민은 성별, 나이, 민족, 종교, 신분, 거주지역, 경제 사정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응급의료법 3조에 담긴 국민의 권리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탓에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이 희생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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