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971.35

  • 133.31
  • 1.95%
코스닥

894.29

  • 38.38
  • 4.48%
1/2

[한경에세이] "제발 요양원만 보내지 마라"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한경에세이] "제발 요양원만 보내지 마라"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때는 바야흐로 15년 전이다. 말로만 복지를 외칠 수 없어 주경야독으로 2011년 요양보호사, 2012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당시 복지시설 현장 실습 중에 본 치매 어르신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떤 분은 오늘 처음 본 나에게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려고 했고, 어떤 이는 당신의 옛날이야기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새하얗게 잊어버린 모습에 무너져내린 가족이 내 앞에서 왈칵 운 적도 부지기수였다. 내가 느끼기에, 치매는 인류 최악의 병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치매는 가정 내에 깊은 불신의 씨앗을 심었다. “아침을 줬니, 안 줬니”, “내 돈을 네가 가져갔다”는 원망과 오해가 뒤섞이며 끈끈하던 가족의 유대가 금이 가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나는 무서웠다. “내가, 또 우리 부모님이 저렇게 변하시면 어쩌지?” 당시 내 나이는 사십 대였고, 부모님의 나이는 일흔 중반이셨다.

    ADVERTISEMENT


    올해 국내 치매 인구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불과 20년도 채 남지 않은 2044년이면 200만 명으로 두 배로 치솟는단다. 어르신들의 애절한 소원은 단 하나, “제발 요양원만은 보내지 마라”다. 반면 뼈가 으스러지도록 돌보는 가족들의 소원은 단 하나, “부모님을 잘 모시고 싶지만, 제발 나도 좀 살고 싶다”다. 이 적나라한 동상이몽을 어찌해야 할까? 연간 3138만원에 달하는 돌봄비는?

    우리는 과연, 이 거대한 재난을 마주할 준비가 돼 있는가? 나는 ‘큰일났다’고 생각한다. 장담컨대 앞으로 한 집 건너 한 집이 치매 환자와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도 예외일 수 없다. 치매는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다. 인프라 구축에는 10년 이상 걸리는데, 수요는 이미 폭발하고 있다.

    ADVERTISEMENT


    내가 십수 년째 목이 터져라 국회와 정부 부처를 돌며 ‘아파트 내 치매 시설 설치’를 호소해 온 이유다. 실제로 서울시의원이던 시절, 1000가구 이상의 대규모 주택단지 내에 재가노인복지시설을 의무적으로 둘 수 있도록 시 조례를 발의해 통과시킨 것도 바로 절박함 때문이었다.

    이후 구청장에 취임해서는 전국 최초로 수색 재개발 지역 내에 ‘은평실버케어센터’를 건립했지만, 짓기까지 반대가 막심했다. 혐오시설이란 이유에서였다. 여러 조율 과정을 거치며 끝내 ‘입주민 우선 입소’에 문제 해결의 키가 있음을 파악했지만, 건립을 완수하고도 이 같은 사항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공은 행정부와 입법부로 넘어갔다. 노인의료복지시설을 공동주택 단지 내 주민공동시설로 의무화하고, 공공기여 시 입주민이 우선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 주시면 좋겠다. 그래야 어르신은 살던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가족은 숨통을 트는 ‘윈윈’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다. 익숙한 곳에서 돌봄을 받으면 실종 위험도 대폭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치매는 국가의 책임이지 개인의 불행이 아니다. 국가를 지탱하는 최소 단위인 ‘가족’이 무너지면 국가도 없다. 전국의 수많은 가족에게 떠넘겨진 이 무거운 짐을, 이제 국가가 짊어져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