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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의 '아시아 제패'…접근법 완전히 바꾼 '멀티내셔널 전략'의 성공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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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의 '아시아 제패'…접근법 완전히 바꾼 '멀티내셔널 전략'의 성공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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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팝이 전 세계 음악 시장의 주류로 우뚝 서기까지 그 여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국경의 벽을 깨부수려 했던 박진영의 집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과거의 뼈아픈 좌절 속에서 길어 올린 새로운 체질 개선, 즉 ‘JYP 2.0’ 시스템의 파괴력을 세상에 증명한 첫 번째 주자이자 한류의 지형도를 바꾼 결정적 선봉장이 바로 걸그룹 ‘트와이스(TWICE)’였다.

    2015년 방영된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SIXTEEN》을 통해 결성된 트와이스는 출발선부터 기존 걸그룹들과는 결이 달랐다. 한국인 5명, 일본인 3명(모모·사나·미나), 대만인 1명(쯔위)으로 구성된 9인조 다국적 조합은 박진영이 머릿속에 그리던 ‘멀티내셔널(Multinational) 전략’의 결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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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 실패는 박진영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토종 한국인 멤버들로 구성된 팀이 현지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맨몸으로 뚫어내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소모적인 싸움인지를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진영은 접근법을 완전히 바꿨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 그룹을 수출하는 단계를 넘어, 기획 단계부터 해외 멤버를 팀의 핵심축으로 영입해 문화적 할인율(Cultural Discount)을 사전에 제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3인방, 이른바 ‘미사모’와 대만 출신 쯔위의 배치는 단순한 구색 맞추기가 아니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멤버들이 팀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해외 프로모션 시 언어 장벽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현지 팬들에게 심리적 친밀감과 동질감을 순식간에 형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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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은 적중했다. 2015년 데뷔곡 ‘OOH-AHH하게’로 시동을 건 트와이스는 이듬해 발표한 ‘CHEER UP’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성공이 박진영 한 사람의 작곡과 프로듀싱에 의존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OOH-AHH하게’에 이어 ‘CHEER UP’과 ‘TT’까지 외부 프로듀싱 팀 블랙아이드필승이 곡을 맡았고, JYP의 기획과 마케팅 역량이 이를 뒷받침했다.

    박진영 개인의 감각에 크게 의존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의 뛰어난 창작자와 회사의 시스템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JYP의 제작 방식이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CHEER UP’에서 사나의 ‘샤샤샤’는 전국적 밈으로 확산됐고, 같은 해 발표한 ‘TT’는 특유의 포인트 안무와 함께 또 하나의 대형 히트를 기록했다. 트와이스는 불과 데뷔 1년여 만에 ‘국민 걸그룹’ 반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 경험은 훗날 팀별로 독립적인 조직이 아티스트의 제작과 마케팅을 전담하는 본부제를 정착시키고, 2018년 박진영이 공식 발표한 ‘JYP 2.0’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트와이스의 진정한 위력은 국내를 넘어 바다 건너 일본 시장에 상륙했을 때 폭발했다. 당시 일본 음악 시장은 2세대 한류(동방신기·카라·소녀시대)의 열풍이 한풀 꺾이고 한일 외교 갈등 여파로 K팝의 지상파 방송 출연조차 극도로 제한되던 혹한기였다.

    이 얼어붙은 시장을 녹인 열쇠가 바로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들이었다. 일본 미디어와 대중은 트와이스를 ‘외국에서 온 침략자’가 아니라 ‘세계적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거쳐 금의환향한 자랑스러운 자국 소녀들’로 받아들였다. 멤버들의 유창한 일본어 인터뷰와 친숙한 예능감은 현지 방송가의 빗장을 단숨에 풀어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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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6월 일본 데뷔 앨범 《#TWICE》는 발매 직후 오리콘 차트를 강타하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연말에는 한국 가수로서 6년 만에 일본 최고 권위의 연말 음악 방송인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것도 일회성 출연에 그치지 않고 수년 연속 홍백가합전 무대에 오르며 일본 대중문화의 주류로 완벽히 뿌리내렸다.

    이후 트와이스가 일본에서 세운 기록은 경이적이었다. 한국 걸그룹 최초의 일본 돔 투어(도쿄돔·나고야돔·교세라돔) 전석 매진, 해외 여성 아티스트 사상 최단기간 도쿄돔 입성, 그리고 닛산 스타디움 입성까지 일본 시장에서 트와이스는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 현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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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와이스의 아시아 제패는 JYP라는 기업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거대 음반 시장이다. 충성도 높은 현지 팬덤과 압도적인 돔 투어 티켓 파워, 굿즈(MD) 판매 수익은 JYP에 막대한 현금 흐름을 안겨주었다. 과거 미주 진출 실패로 휘청거리던 회사의 재정은 트와이스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익 덕분에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트와이스의 성공은 '멀티내셔널 전략'의 유효성을 완벽히 검증해 주었다. 현지 출신 멤버를 한국식 K팝 시스템으로 육성해 글로벌 무대에 올리는 모델이 아시아 전역에서 완벽히 통한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입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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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와이스가 아시아를 평정하며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과 운영 노하우는 단순한 재무적 성과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훗날 박진영이 “한국인 멤버가 단 한 명도 없는 전원 일본인 현지화 그룹”을 기획하는 ‘니쥬(NiziU)’ 프로젝트로 나아가는 발판이 됐으며, 나아가 스트레이 키즈와 함께 다시 한 번 거대한 서구권 미주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가장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투어버스에서 겪었던 뼈아픈 눈물은, 마침내 트와이스의 거대한 성공을 통해 화려한 아시아의 왕관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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