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아파트 비대위, 추진위원장 고소
사업 16년째 답보…1대1 선회 주장도
제자리걸음 중인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더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합원들끼리의 소송전이 불거져서다. 16년째 추진위원회 단계에 머무는 동안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 등 각종 규제를 맞으면서 내부 불만이 폭발한 결과다.
◆재건축 답보에 소송전
1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은마소유자협의회(은소협)가 이달 초 이정돈 재건축추진위원장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은소협의 정보공개 요구에 허위로 응했다는 이유에서다. 은소협은 은마아파트 재건축사업의 비상대책위원회격인 단체다. 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지난 6일 수서경찰서로 내려보냈다.
발단은 은소협이 지난 5월 추진위에 토지등소유자 명부를 요구하면서부터다. 추진위에서 제공한 명부에 소유주 전화번호가 삭제되는가 하면 주소가 실제와 달리 기재됐다는 게 은소협의 주장이다. 은소협 관계자는 “도정법의 정보공개 관련 규정은 가장 최근의 자료를 원본 그대로 제공하도록 돼 있지만 수년 전 자료를 건네준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마저도 전화번호를 가리는 등 고의로 다른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도정법은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소유주들에게 모든 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설사 유착이나 비리 등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보공개에 응하지 않을 경우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허위정보를 제공하면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징역형을 받는다.
은소협 관계자는 “은마아파트 토지등소유자들에게 재건축과 관련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면서 “추진위는 비대위가 소유주들과 연락하면서 세력이 커지는 걸 막기 위해 과거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고소인이 된 이정돈 추진위원장은 “아직 고소장을 받지 못했다”며 “비대위에서 원하는 모든 자료를 제공했다”고 선을 그었다.
◆“1 대 1 재건축 해야”
은마아파트 재건축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최근 본격화됐다. 추진위의 재건축안이 잇따라 서울시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사업이 지연돼서다. 그동안 재건축 관련 규제란 규제는 모두 맞게 됐다. 결국 비대위가 구성되면서 사업 방식을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2003년 설립된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16년째 조합 설립을 못하고 있다. 2년 전 이맘때 49층 초고층 재건축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심의조차 받지 못하면서 좌절됐다. 결국 주민투표를 거쳐 35층안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다시 네 차례나 반려됐다. 올해 초엔 정비계획안을 보완해 제출했지만 아직 도계위 심의 안건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부활했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도 확정됐다.
은소협은 기존 정비계획안과 달리 1 대 1 재건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 대 1 재건축이란 가구수 증가가 거의 없는 재건축 사업 방식을 말한다. 일반분양 수익이 없기 때문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나 분양가 상한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추진위가 마련한 재건축안은 현재 4424가구인 단지에 상한 용적률 300%를 적용해 임대 846가구와 일반분양 660가구를 포함한 5930가구를 짓는 내용이다. 반면 은소협의 재건축안은 4424가구 그대로 짓는 계획이다. 가구당 추정 분담금은 추진위 안보다 1억원가량 높지만(전용면적 84㎡ 기준 3억6000만원) 대지지분 손실이 없어 실질적인 부담금은 더 낮다는 게 은소협의 주장이다. 이재성 은소협 대표는 “현재 추진위 안으론 각종 규제 아래서 소유자들의 실익이 전혀 없다”며 “1 대 1 재건축 방식으로 진행하면 이후 사업 절차에 속도를 낼 수 있고 고급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은마아파트 추진위를 비롯한 주민들은 서울시가 고의적으로 인허가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지난 봄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근엔 국토교통부와 청와대 앞에서도 릴레이 시위 중이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서울 집값 상승세가 안정될 때까지 인허가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치동 A공인 관계자는 “올해 연말 추진위원장 선거가 예정됐기 때문에 기존 추진위와 비대위의 세력 대결이 격화되고 있다”며 “사업이 계속 지지부진하면 대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