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이트리스트 제외…반도체, 도리어 일본이 '역풍' 맞는다

입력 2019-08-02 11:25
수정 2019-08-02 11:26
韓, 지난해 240억달러 대일 무역적자
20%가 반도체 연관 수입품, 반도체 장비가 1위

日 언론 "한국의 '탈일본' 우려된다" 반응
시장조사전문기관 "삼성·SK 큰 문제 없을 것"



일본이 2일 오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는 안건을 각의(국무회의 격)에서 의결했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는 도리어 이 조치가 장기적으로 일본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최대 생산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소재 재고가 남아 있는 3분기까지 거래처 다변화를 할 수 있다면 일본 소재 기업들이 '최대 고객'을 잃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업계는 통상 소재 수입처를 바꾸면 거기에 맞춰 생산라인도 다시 설계해야 해 이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풀리더라도 종전처럼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봤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일본에 307억달러어치를 수출하고 546억달러어치를 수입해 24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다. 한국의 전체 수입 중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로 중국(19.9%), 미국(11.0%)에 이어 세 번째다. 일본의 중요 고객이란 얘기다.

핵심 산업인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일본에 의존한 영향이 크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수입한 일본 제품 중 1위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로 전체의 11.3%에 달한다. 지난해 반도체 제조용 장비로만 일본에 57억6000만달러 규모 적자를 봤다.

반도체 제품 자체 수입 비중(8.2%)까지 더하면 약 20%가 반도체 연관 수입품이었다. 소재에선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18억5000만달러 적자), 부품에선 전자부품(21억2000만달러 적자) 영향이 컸다. 일본이 이미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린 포토레지스트(감광액), 고순도 불화수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가 결국 자국 기업들 발등을 찍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전날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 강화로 한국 정부가 향후 반도체 소재를 포함한 첨단소재 개발에 약 6조원을 투입하려 한다"며 "향후 한국의 기술 개발과 거래처 다변화가 진행되면 일본 우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무라 아키오(三村明夫) 일본상공회의소 회장도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내놓자 "한국이 일본에 의존하던 일부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오히려 일본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불안정한 소재 공급 상황 대응이 급선무다. 다만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긴다는 전제 하에 장기적으로는 메모리 가격 반등과 함께 소재 국산화 등 체질 개선까지 이룰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흘러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초 일본 수출규제 조치 이후 중국과 유럽산 소재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반도체 공정 필수 소재인 불화수소의 경우 이미 중국산 수입 비중이 일본산보다 많다. 불화수소 원료인 '형석'은 전세계 생산량의 60%가 중국에서 채굴된다.

또 이들 기업은 국내 소재기업을 통해 불화수소 등을 공급받아 일부 라인을 세운 뒤 반도체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도 전날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5개월 정도의 불화수소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며 "(일본 수출규제)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오는 3분기 말쯤 명확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보고서는 "일본은 불화수소 시장점유율 60~70%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생산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단기적으로 문제가 없다"면서 "민감 품목 수출시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 하는 대만 등의 나라와 같은 선상에 서게 됐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메모리 가격도 반등 조짐을 보인다.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일본 수출규제 조치 이후 D램 현물 가격은 20%가량 올랐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실적도 오는 3분기 개선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 삼성전자는 연간 영업이익의 75%를 반도체 부문에서 낼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2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린 컨퍼런스콜(투자자 전화회의)에서 낸드(NAND) 플래시 메모리 출하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30% 늘었다고 밝혔다. 낸드 출하 증가율이 연간 기준으로도 30% 초반 상승이 예상돼 시장 상승률을 소폭 웃돌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에 대해 "올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선 낸드 플래시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며 "3분기 D램 값 정체가 계속되더라도 2분기에 비해 큰 폭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