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버리기·장보기·잠든 아이 깨우기·벌레 잡기…뭐든 다해주는 '아파트의 김집사'

입력 2019-07-26 17:31
수정 2019-07-27 04:02
(주)달리자가 운영하는 김집사
연세대 96학번 동기 의기투합


[ 류시훈 기자 ]
폭우가 쏟아진 26일에도 ‘집사님’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 편의점에서, 카페에서, 분식집에서 아파트 주민들이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주문한 상품을 대신 사서 자전거에 실었다. 빗줄기를 뚫고 도착해 벨을 눌렀다. “아이고, 이렇게 비가 오는데…. 정말 미안해요.” ‘공짜’ 서비스가 아닌데도 미안해하는 고객이 유독 많은 날이었다.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 분당·판교, 하남, 수원 광교 등의 대단지 아파트 주민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김집사’ 이야기다. 김집사는 (주)달리자가 운영하는 생활서비스 브랜드. 쉽게 말해 심부름을 해준다. 작년 5월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몰려 있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파크하비오’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1년3개월 만에 서울·경기지역 160개 아파트 단지, 17만 가구로 서비스 범위를 넓혔다.

집사 한 명이 하루 30여 건 ‘심부름’

집사들이 하는 심부름은 편의점, 음식점, 슈퍼, 카페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사다주는 일이 주다.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준다. 가격은 건당 2000원. 세탁물 찾아오기, 우체국 다녀오기,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 등을 요청하면 3000원을 내야 한다. 가구나 짐을 옮기는 일은 8000원. 소비자들은 앱에 있는 메뉴 이외에 다양한 심부름을 요청하기도 한다. 집사들은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초인종을 눌러서 잠든 자녀 깨우기, 벌레 잡기, 학교·학원에 아이 책가방 가져다주기 등도 한다. 한 주민이 “버스정류장 벤치에 안경을 두고 온 것 같다”고 해 2000원에 찾아주기도 했다. 한 집사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더위에 지친 학생들에게 줄 아이스크림 20여 개를 주문한 적도 있다”며 “위험하지 않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고 말했다.

현재 집사는 70명.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교대로 일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17개로 나눠 거점별로 집사들을 배치했다. 모두 정규직이다. 연봉은 3000만원에 육박한다. 백화점 매니저 출신, 군 부사관 출신 등 다양한 경력의 20~30대 집사들은 매일 한 명이 많게는 30건이 넘는 ‘심부름’을 한다.

주요 단지의 상가에 있는 거점에 상주하다가 앱으로 주문이 뜨면 챗봇으로 고객과 대화한 뒤 움직인다. 이동수단은 모두 일반 자전거와 전기자전거다. 오토바이가 아니라 주민들도 집사들에 대한 반감이 덜하다.

상가 자영업자의 ‘도우미’로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김집사를 좋아한다. “덕분에 장사할 맛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김집사를 통한 주문 건수가 늘어 비용 한 푼 들이지 않고도 매출이 증가하는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잠실에 있는 한 김밥집 매출은 70% 늘기도 했다. 은마아파트 상가의 분식집 주인은 김집사 직원들에게 고맙다며 떡볶이와 김밥을 무료로 주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 내 소규모 점포들은 상대적으로 영세하다. 비용이 드는 배달앱을 이용할 형편이 안 된다. 가락동 헬리오시티 단지 내 상가의 한 자영업자는 “배달앱과 배달대행업체를 이용하면 월 13만원 안팎의 포스 사용료와 3%대의 신용카드 수수료, 건당 4000원 안팎의 배달료 등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김집사는 160개 단지 내 상가와 그 주변 3000여 개 점포의 상품을 주민에게 배달해주면서도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잠실엘스아파트의 한 음식점 주인은 “배달을 하지 않는데, 점점 많은 손님이 김집사로 주문해 놀랐다”고 했다.

컴퓨터공학과 동기 공동 창업

김집사를 운영하는 달리자는 최우석 대표(44)와 이동진 마케팅본부 이사(43)가 공동 창업했다.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96학번 동기다. 최 대표는 웹젠 등에서 개발자로 일했고, 이 이사는 NHN을 거쳐 모터미디어라는 광고대행사를 운영했다. 두 사람은 2017년 겨울 술을 마시며 “배달앱에 시키면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요금을 낮출 수는 없을까”라는 얘기를 하다가 회사를 차렸다.

막상 시작했지만 서비스를 알리는 게 쉽지 않았다. 가장 빨리 알릴 방법을 찾은 게 대단지 아파트의 ‘맘카페’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요즘 아파트 주민 카페는 인증 절차가 까다롭다. 실제 거주하지 않으면 회원 자격을 주지 않는다. 이 이사는 두 번이나 집을 옮기며 맘카페에 가입해 김집사를 알렸다. 그 결과 지금은 17만 가구에 서비스를 하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