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한민국 안보역량이 국제시험대 올랐다

입력 2019-07-24 18:03
러시아 영공 침범, 중국은 KADIZ 거듭 유린
북한 신형 잠수함 시위…한·미·일 동맹은 삐끗
정부, 안보주권 현실 직시하고 전략도 제시해야


대한민국 영공을 러시아 군용기가 침범한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으나 이틀째 그 배경도, 도발 이유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와 나란히 러시아 전략폭격기 두 대와 중국 전략폭격기 두 대가 동해상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함께 무단 진입한 것에 대해서는 하루 만에 중국 국방부가 공개적으로 ‘연합 작전’이라고 발표해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은 신형 잠수함 공개로 무력시위를 재개했고, 일본은 일본대로 ‘독도 도발’에 나섰다. 우리 안보외교가 처한 상황과 지향점에 대해 정부가 책임 있는 설명을 해야 할 때다.

중차대한 안보 사건이 한꺼번에 복합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중국 북한의 움직임은 마치 의도된 듯, 정교하게 잘 기획된 듯한 프로그램이다. 이런데도 청와대는 그간 숱하게 열었던 국가안보회의도 열지 않았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러시아대사관 무관과 우리 국방부 실무자 간 통화내용을 전하면서 “기기 오작동으로 빚어진 일”이라는 변명을 대신 발표하기도 했다. 영공 침입에 대해 러시아는 앞뒤 안맞는 해명을 했다가 아예 부인하는 공식 전문을 보내왔다. 그런 일로 옛 소련은 한국 민항기를 격추시켰던 사실을 한국인은 기억하고 있다.

러시아의 공식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한편 KADIZ에 대한 명확한 입장 천명과 외교안보적 방침 확립이 시급하다. 특히 중국을 향해 분명한 의지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 중국은 군부와 더불어 외교 쪽에서도 드러내놓고 KADIZ를 무시해왔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무단 진입은 올 들어서만 25차례, 급기야 러시아와 연합 진입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의 용인은 영공주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한반도 외교안보 지형을 총체적, 입체적으로 보자면 얽혀 있는 사안이 너무 많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 기다렸다는 듯 정색을 하고 나서는 일본의 독도영공 개입, 때마침 방한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행보까지 맞물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4강국’은 안보외교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하는 듯한 모습인 데 반해 우리 내부는 안이하다. ‘삼척항 목선 사건’과 ‘2함대 허위자수 종용사건’ 등으로 해군은 동서해가 모두 뚫렸고, 육군은 병영 내 가혹사건 등으로 허둥대고 있다. 북한을 의식해 한·미 간 통상적 방어훈련 명칭에서 ‘동맹’을 빼 한·미 동맹관계를 먼저 흔든다는 비판을 자초한 국방부다. 군의 기강이 무너지고 한반도 안보지형에 먹구름이 밀려오는데도 일본의 ‘수출규제’만 극한 감성으로 규탄하는 국회도 걱정스럽다.

한·미 동맹에 이어 일본과의 불필요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변화 논란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까지 흔들린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핵 문제로 2년이란 시간을 보냈는데, 갑자기 러시아까지 한반도로 끼어드는 게 구한말 때 열강의 각축이 재현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안보역량이 국제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자주국방 의지와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안보주권 수호를 위한 전략은 있는지, 전통의 동맹체제가 유효한지 등 한국 정부를 향한 질문이 꼬리를 잇는다.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