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大전환, 정책은 그대로
위기를 위기로 보지않는 게 문제
이대로는 제조업 붕괴 불가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 안현실 기자 ]
20세기 노동과 교육으로 21세기 공장을 꿈꾸는 게 가능한가? 문재인 대통령은 ‘제조업 르네상스’ 행사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팩토리 2000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2000개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건지 알 수 없지만, AI 기반 스마트팩토리를 하려면 대기업 정도가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산현장에서는 강성노조가 반대하면 AI는 둘째치고 스마트팩토리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노조 문제를 해결해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AI 기반 스마트팩토리를 설계하고 운영할 인력이다. AI 인력을 국내서 구할 수 없는 지금 같은 상태로 가면 희망이 안 보인다. 일본은 대학 전체를 문·이과 구분 없이 AI 인력 양성 쪽으로 돌린다는데, 우리 정부는 대학을 벌주는 감사에만 열을 올릴 뿐 교육개혁에는 관심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제조업 르네상스가 허구로 들린다고 하는 데는 노동·교육 개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이유만 있는 게 아니다. 생산성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은 “제조업은 밖으로 나가라”는 압박이나 다름없다.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그대로 두고 밀어붙이는 소득주도성장부터 제조업 르네상스와는 상극이다.
정부가 일류 제조기업 수를 1200개로 늘리겠다는 것도 그렇다. 우리 맘대로 일류기업을 정의하고 숫자를 늘려봐야 의미가 없다. 밖에서 인정하고 서로 손을 잡자고 하는 기업이 진짜 일류다. 글로벌 잣대가 아니라 국내 기준으로 기업 크기를 재고, 일정 기준을 넘는 순간 사전적 규제를 쏟아내는 공정경제 때문에 몇 안 되는 일류기업들조차 고사당하게 생겼다.
그렇다고 혁신성장이 제조업에 길을 터주는 것도 아니다. 제조업과 신산업의 융합을 말하지만 신산업 진입이 자유롭지 않으면 융합은 일어날 수 없다. 제조업의 서비스화도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빨라진다.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제조업의 절반도 안 되는데, 야당 때 서비스업 얘기만 나오면 원격의료, 의료 민영화 음모로 몰아갔던 게 문재인 정부다. 자신들이 짠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일본은 공장의 해외이전 등으로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들고 성장률이 떨어지자 수도권 규제를 폐지했다. 이 정부는 균형발전 때문에 기업 유턴을 촉진할 가장 강력한 카드인 수도권 규제 완화 얘기는 꺼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여기에 ‘화평법’ ‘화관법’ ‘산안법’ 등을 기회로 환경부 고용노동부가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규제들은 제조업 르네상스를 더욱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제조 4강’이 목표라고 했다. 밖에서는 미·중 충돌, 미국의 에너지 독립으로 ‘동북아시아 제조업 기지화’와 ‘걸프 에너지 기지화’라는, 그동안 글로벌 분업을 지탱해온 양대 축이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국이 자신이 그렸던 분업 구도를 깨고 에너지도, 제조업도 미국 중심으로 가져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로벌 산업생태계가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으로 쪼개지면 우리 제조업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한·일 관계라도 좋으면 함께 지혜를 모아보자고 하겠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에너지의 지정학적 변동은 또 어떤 불확실성을 몰고올지 모른다. 한국은 망(網) 연계로 전력 수출입이 가능한 독일과 다르다. 100% 재생에너지를 완수하겠다는 탈(脫)원전이 에너지 공급 불안정성, 급격한 가격 변동성으로 이어지면 제조업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 어디에도 에너지 안보 얘기는 없다.
새로운 게 있다면 대통령이 제조업 르네상스 회의를 직접 주재한다는 것뿐이다. 청와대 참모진 인사를 통해 던진 시그널은 그 실낱같은 희망마저 앗아갔다는 지적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 길이 ‘제조업 붕괴’라는 불길한 예감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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