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 규모에 따른 낡은 규제, 없앨 때 됐다

입력 2019-06-19 17:45
"구글과 경쟁하는데, 기업 커지면 부도덕하다니"
거미줄 규제, 글로벌 스탠더드 맞게 뜯어고쳐야


20년 전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네이버의 성장 과정은 대단히 극적이다. 지금도 많은 청년과 기업인 지망생에게 성공모델이 되면서 급변하는 IT업계에서 제대로 한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한국 특유의 규제인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온갖 규제를 다 받고 있다.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본인 의사와 달리 ‘총수’로 지정돼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받고 있다. 네이버는 한국에서 성공한 벤처기업이 규모가 커질 때 어떤 간섭과 통제를 받는지, 역량 있는 기업인들이 왜 기업을 키우려들지 않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GIO가 한 학회에서 토로한 애로는 국내 혁신기업들이 처한 이런 구조적 문제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한경 6월 19일자 A1, 5면). 그는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에서 하루하루 전쟁을 벌이는 기업들 고충과 애로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했다. 모두 경영일선에서 보고 느낀 것이어서 더욱 공감대를 자아낼 만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기업이 크거나 작다는 것은 글로벌 스케일로 봐야 한다”는 언급과 “회사가 더 커지는 게 부도덕하다면 기업가 정신과 공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성장·혁신 기업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고민일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풍조에 대해 “국제경쟁에 골몰하는 트랙터 생산 회사더러 직업 잃은 농민들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지나치다”고 한 지적도 주목할 만하다.

자산, 매출액, 시가총액 등 평가 기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글로벌 500대 기업’에 드는 한국 기업은 많아야 10개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받아 공정거래법을 위시한 30개가 넘는 개별법의 촘촘한 규제를 받는 기업도 국제무대에 서면 속된 말로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정부 공인 대기업’이 되면 상호·순환출자제한과 채무보증 제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공시의무 강화,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제한 등 온갖 규제를 받게 된다. 무한 국제경쟁을 가로막는 내부의 장벽들이라는 게 1987년 이 규제가 도입된 이래 기업계의 일관된 하소연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사실상 한국에만 있는 이 규제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흐지부지돼 버렸다. 오히려 현실은 거꾸로 가서 자산 10조원이던 지정 기준이 5조원으로 강화됐다. 올해도 59개 기업집단이 이 규제를 받고 있다. ‘기업의 성장은 부도덕해지는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인식 구조가 아니라면 유지될 수 없는 규제다.

정부가 주력할 일은 규제를 풀어 우리 기업이 더 잘 뛰게 응원하고, 더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규제가 철벽처럼 버티고 있으니 젊은이들이 ‘철밥통의 규제완장’과 ‘지대추구 기득권 계층’을 선호하며 공시족으로 몰리고 의사·변호사 같은 자격증에 목매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에서도 기업가 정신이 고취되고 청년들이 창업대열로 몰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무한경쟁의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이 GIO는 구글 페이스북 등에 맞서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런 기업을 키워도 모자랄 판에 ‘기업분할명령제’ 같은 구시대적 행정 간섭은 떨쳐내야 한다. 글로벌 500대 기업에도 못 드는 기업을 두고 ‘재벌’이라며 대중의 잘못된 심리에 편승하는 응징행정은 곤란하다. 정부는 이 GIO가 왜 이런 문제를 제기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