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명성 되찾은 MS…'포지셔닝' 전략 빛났다

입력 2019-06-13 16:38
Let"s Study 전략과 혁신(1)

경쟁자 적은 블루오션 공략
나델라, MS CEO 취임 후
'클라우드 퍼스트' 비전 제시
급성장하는 시장 빠르게 선점



강릉 경포대에 가면 수제 햄버거 가게가 하나 있다. 나는 이곳을 다녀와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전략적 개념을 제대로 활용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항상 줄이 길게 서 있고, 매장 안에서 자리를 찾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곳이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햄버거가 맛있다. 모양만 봐도 먹음직스러운 모차렐라 치즈버거는 여심뿐 아니라 남심까지 흔들 정도다. 둘째, 독점적 환경에 자리잡고 있다. 경포대 부근에는 횟집이 즐비하다. 한 곳에서 먹고 나오면 바로 옆집에서 호객행위를 할 만큼 정신이 없다. 이런 횟집 한가운데 이 햄버거 가게가 떡 하니 있다. 근방에서 유일한 햄버거 가게다.

이 햄버거 가게의 성공 요인을 경영전략, 비즈니스전략 관점에서 설명해보겠다. 비즈니스가 성공하려면 케이퍼빌리티(capability)와 포지셔닝(positioning)이란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 ‘맛있는 햄버거’를 만드는 역량, 즉 케이퍼빌리티도 중요하지만 좋은 입지 또는 독점적 환경에 포지셔닝(위치)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케이퍼빌리티는 ‘오르기 쉬운 방법(역량)으로 올라라’라는 것이고, 포지셔닝은 ‘오르기 쉬운 길(환경)을 찾아라’는 것이다. 이 햄버거 가게는 특히 포지셔닝 전략을 제대로 활용했다. 만일 도심 한가운데 있다면 햄버거 맛이 뛰어나더라도 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 등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경포대 햄버거 가게는 경쟁자가 적은 지방도시를 택했고, 여행객이 많이 찾는 위치에 제대로 포지셔닝했다.

역량·입지가 경쟁력 결정

홈플러스 전략도 이와 비슷하다. 홈플러스는 15개 국내외 할인점 브랜드가 40개 점포를 오픈한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뒤늦게 합류한 후발 주자였다. 홈플러스가 1호점을 연 1997년 9월 초, 이미 영업 중인 대형마트는 무려 40개에 달했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이마트가 선도해온 국내 유통사업에서 1위 이마트, 2위 롯데마트에 이어 3위에 올라섰다. 어떻게 그런 성과를 이룰 수 있었을까. 홈플러스는 이마트 매장이 주로 포지셔닝한 수도권을 피해 영남권에 포지셔닝했다. 수도권과 떨어져 경쟁을 피할 수 있고,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 강도가 약하며, 안정적 배후 인구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마트와 홈플러스의 포지셔닝 전략을 비교해보면 흥미진진하다. 이마트는 최초에 수도권을 점령한 뒤 차츰 중소도시로 진입했고, 홈플러스는 영남거점을 확보 후 수도권으로 진입했다. 이마트는 강한 브랜드 파워, 즉 케이퍼빌리티를 활용해 부동산 비용이 낮은 교외지역에 매장을 포지셔닝하고 고객을 유인함으로써 스스로 상권을 조성해가는 전략을 펼쳤다. 반면 홈플러스는 부동산 비용이 높지만 도심 한복판 중심상업지구에 포지셔닝했다. 비용은 높지만 고객방문이 용이하고 면적당 매출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국내에서 카카오톡에 밀려 고전하던 라인 역시 글로벌로 스마트하게 포지셔닝해 성공할 수 있었다. 카카오톡의 월간활성이용자(MAU: monthly active users)는 4381만 명(2018년 기준)으로 국내 인구 5000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독점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라인은 글로벌 시장, 특히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는 전략을 취했다. 메신저 시장 초기에 라인은 여러 곳에서 경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와츠앱’, 중국에서는 ‘위챗’ 등 거대한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고전했다. 이 때문에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현재 라인의 월간활성이용자는 약 1억6500만 명이며, 이 중 3분의 2는 일본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4개국에 집중돼 있다.

홈플러스, 이마트와 반대 전략

작년 말 세계 시가총액 1위를 탈환하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포지셔닝 전략을 활용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는 2014년 취임 후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향후 클라우드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여러 소프트웨어를 클라우드와 연결하면 구글, 애플, 아마존을 앞서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시장 초기 클라우드 시장엔 강력한 경쟁자인 아마존의 AWS가 있었다. 하지만 하드웨어 진영으로 가서 애플, 삼성, 화웨이와 싸우거나, 소프트웨어 진영으로 가서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싸우거나, 미디어 시장으로 가서 넷플릭스, 유튜브 등과 싸우는 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강력한 경쟁자는 있지만 시장 초기라서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고 성장 가능성은 큰 클라우드 시장을 선택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선 자신의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간 시너지를 내는 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클라우드 시장에 빠르게 포지셔닝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고, 16년 만에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요지는 경쟁하지 말고, 가급적 독점할 수 있는 빈 공간을 찾아 스마트하게 포지셔닝하라는 것이다.

편의점, 노래방, 저도주 위스키 ‘골든 블루’, 삼진어묵, 설빙, 고봉민김밥人, 순하리 등의 공통점이 뭘까. 정답은 처음에 부산·경남 지역에서 포지셔닝해 큰 호응을 얻은 뒤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일본 수제 승용차 브랜드 ‘미쓰오카’도 국내 시장에 재진출하면서 서울이 아니라 부산을 교두보로 삼았고, 광안리에 매장을 열었다.

이렇게 부산이 소비재·유통업계의 ‘테스트베드’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가 뭘까. 부산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적고 유행에 민감하며, 구 단위 지역 간 격차가 비교적 적은 350만 단일 상권이란 점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들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포지셔닝하기 위한 충분한 매력 요소가 된다. 부산은 항구도시로 과거부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도 유행의 진원지가 됐다. 이런 이유로 ‘부산 성공=전국 흥행 성공’의 보증수표로 통한다.

추자현 中서 새로운 포지셔닝

굳이 대형마트, 글로벌 기업이 아니더라도 포지셔닝 전략을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배우 추자현 씨는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회당 출연료가 1억원이라고 한다. 사실 그의 인기는 한국에서는 그리 높지 않았다. 추자현 씨는 2006년 대종상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은 ‘사생결단’으로 톱배우 대열에 올라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후 ‘미인도’ ‘실종’ ‘참을 수 없는’ 등에 출연하고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 본토에 포지셔닝해 자신의 케이퍼빌리티를 펼쳐냄으로써 톱배우 반열에 올라섰고 인생을 역전시켰다.

당신은 어떤가. 만일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면 포지셔닝을 고민하는 것인가, 케이퍼빌리티를 걱정하는 것인가. 둘 다 고민이 크다면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증거다.

이재형 < 피플앤비즈니스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