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이달 말 트럼프 방한 전에 남북 정상회담 열려야"

입력 2019-06-12 20:05
美·北 대화 불씨 살리기…'오슬로 구상' 밝혀

오슬로 연설 후 英 BBC와 대담
4차 정상회담 北에 공개 요구


[ 김형호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이전에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28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후에 방한할 예정이다.

북한 비핵화 구상 밝힌 文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열린 오슬로포럼 연설 후 영국 BBC와의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6월 말 방한하게 돼 있는데 가능하다면 그 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남 여부와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김 위원장 선택에 달렸다”고 전제했지만 문 대통령이 조기 4차 남북 정상회담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만큼 북측 반응이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친서 전달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선 “친서가 전달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대체적인 내용도 미국으로부터 전달받았다”며 인지 사실을 공개했다. 이어 “남북과 북·미 사이에 공식적인 회담이 열리지 않을 때도 두 정상 간 친서는 교환되고 있고 그때마다 한국과 미국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 대화의 열정이 식을 수 있다”며 두 정상의 조속한 만남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친서에서 상대에 대한 신뢰와 변함없는 대화 의지를 밝히고 있어 대화 모멘텀은 유지되고 있지만 대화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열정이 식을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조속히 만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동·서독 선례 따라 접경지역 피해 해결

수교 60주년을 맞아 노르웨이를 국빈방문한 문 대통령은 이날 오슬로대 연설에서 “진정한 평화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국민 삶을 나아지게 해야 한다”며 ‘일상을 바꾸는 적극적 평화’ 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분단이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국민의 사고까지 제약해왔다”며 “그로 인해 경제는 선진국이 됐지만 정치문화는 경제 발전을 따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남북 주민들이 분단으로 겪는 구조적 폭력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1972년 동서독이 접경지역 화재와 홍수, 수자원 오염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설치한 접경위원회를 사례로 들었다.

남북 간 대립으로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는 조업권 위협, 병충해와 가축전염병 등을 우선 해결해 평화가 삶 속에 체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과거 동서독의 선례가 한반도에도 적용돼 평화가 내 삶을 나아지게 하는 좋은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이 모일 때 분단도 치유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국민을 위한 평화’라고 명명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민 참여 없는 정치권 중심의 통일론은 ‘색깔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며 “이번 연설은 국민이 불편함을 느끼는 구조적 갈등을 찾아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 노력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북 교착은 적대심 녹이는 과정

문 대통령은 ‘6·12 미·북 정상회담’ 1주년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담대한 의지와 지도력이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화가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이나 선언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6·25 전쟁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노르웨이 출신 트뤼그베 리 전 사무총장이 유엔군 파병을 강력히 호소해 관철시킨 일과 노르웨이 정부가 의료지원단을 보내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오슬로포럼은 노르웨이 외교부와 국제민간기구인 ‘인도주의대화를위한센터’가 주관하는 국제 행사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이 기조 연설자로 참여했다. 이날 문 대통령 연설에는 하랄 5세 노르웨이 국왕, 에릭슨 서라이데 외교부 장관 등 고위 인사 600여 명이 참석했다.

오슬로=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