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 적정 비율 논쟁보다
재정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 한상춘 기자 ]
한국은 유난히 논쟁이 많은 나라다. 모든 경제 현안이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요즘 들어서는 국가채무, 화폐개혁, 금리 인하, 원·달러 환율 상승 용인 문제를 놓고 논쟁이 거세다. 종전과 다른 것은 4대 논쟁의 출발점이 정책당국과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국가채무와 화폐개혁 논쟁이 그렇다.
국가 재정은 민간 살림살이와 다르다. ‘양입제출(量入制出)’을 지향하는 민간은 흑자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양출제입(量出制入)’을 전제로 하는 재정은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가채무가 발생해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면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덜 걷고 재정지출도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에서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재정 건전성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로 평가한다. 선진국은 100%, 신흥국은 70% 이내면 재정이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선진국은 신흥국보다 국가 신뢰도가 높아 재정 운영에서 여유가 많다는 의미다. 일본처럼 최종 대부자 역할이 저축성이 높은 국민에게 있을 때는 국가채무 비율이 250%에 달해도 국가 부도가 날 가능성은 작다.
특정국의 재정이 건전한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가채무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가채무는 포함할 대상과 채무 성격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한다. 협의 개념은 중앙과 지방 정부의 현시적 채무를, 광의 개념은 협의 개념에다 공기업의 현시적 채무를, 가장 범위가 넓은 최광의 개념은 광의 개념에다 준정부기관, 그리고 모든 기관의 묵시적 채무까지 포함한다.
한국은 세 가지 기준에 따라 국가채무 비율이 크게 차이 나는 것도 특징이다. 협의 개념으로는 40%, 광의 개념으로는 70%, 최광의 개념으로는 140% 내외다. “재정이 건전하다” “국가부도가 곧 닥친다”는 극과 극의 주장이 함께 나오는 것도 이해된다는 것이 글로벌 투자은행과 국제신용평가사 한국 담당자들의 시각이다.
국가채무 논쟁보다 재정을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채무는 후손 세대에게 빚을 지우는 것인 만큼 복지 등 단순 이전성 항목이나 공무원 급여 등 일반 경직성 항목에 재정이 과다 지출돼서는 안 된다. 경기부양 효과가 큰 투자성 항목에 쓰임새를 집중해 후손 세대의 채무상환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써야 한다.
정책당국의 부인에도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는 화폐개혁 논쟁을 바라보는 나라 밖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동일한 문제인데도 내편이냐, 네편이냐에 따라 평가가 다르고 남 탓만 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한 여건에서 집권 민주당 의원이 논쟁에 불을 지른 것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한국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화폐개혁 논쟁은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것인지 여부다. 설렁탕 한 그릇 값 7000원을 7.0원으로 표기하는 것처럼 화폐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것을 말한다. 설렁탕 값처럼 대내적으로 1000분의 1로 화폐거래 단위를 축소할 경우 대외거래도 달러당 1190원(5월 말 원·달러 환율 기준)이 1.19원으로 축소된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장점으로는 △기장 처리 간소화 △인플레이션 억제 △부패 척결과 지하경제 양성화가, 단점으로는 △신권 발행비용 등 국민 부담 증가 △부동산 투기 활성화 △경기 침체 등이 꼽힌다. 한국처럼 정보기술(IT) 인프라가 잘 갖춰진 국가에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성공’을 전제로 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도 이해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융위기 이후 화폐개혁을 단행한 국가는 많다. 선진국은 신권을 발행해 구권을 교환하되 리디노미네이션을 병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도한 목적을 달성했다. 반면 리디노미네이션과 결부된 화폐개혁을 단행한 신흥국은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면서 경제가 더 불안해졌다.
화폐개혁에 대한 관련 기관의 엇갈린 행보도 놀라움을 주고 있다.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면서 청와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이 검토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면 우리 국민조차 믿기가 어렵다. 국민 대다수가 속한 서민경제는 어렵다 못해 쓰러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화폐개혁을 언급하는 그 자체가 잘못됐다는 시각이 많다.
화폐개혁은 국민의 높은 관심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경기가 안정되고 국민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 선진국은 이 조건 충족 여부를 중시했지만 신흥국은 장기 집권 등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급하게 추진했다. 이 점에서 결과의 차이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