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GDP 40%대 중반은 과도
계획된 지출에 효과 없으면 악영향
통일 위해서도 건전 재정운용 절실"
이영 < 한양대 교수·경제학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가채무비율이 2~3년 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대 중반이 될 듯하다고 했다. 이는 지난달 16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채무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삼은 근거를 따져 물은 것에 대한 답변으로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증세 논의를 부인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대규모 국가채무 증가를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이런 급격한 재정건전성 악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첫째, 계획하고 있는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외환위기 전 GDP 대비 10% 수준에서 2007년 29%로, 2017년 38%로 증가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가채무 확대의 주요인이었고, 2000년대 초 복지 확대와 2010년대 초 세수 감소는 추가적인 재정건전성 악화의 원인이 됐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채무 증가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현재 논의하고 있는 38%에서 45%로의 국가채무 증가가 5년이란 기간 안에 계획된 경우는 없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저비용 조정 방안의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고용 악화와 소득 감소라는 나쁜 결과를 가져온 것처럼, 급속한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가 경제 주체들에게 고비용에 따른 조정을 강요해 경제 탄력과 유인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둘째, 국가채무 증가가 사전 계획과 통제 가능한 재정지출 확대에 기인한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예측 불가능한 경제위기 또는 조세수입 감소로 인한 국가채무 증가는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 효과로 연결되지만, 계획된 지출 확대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는 해당 지출의 효과가 크지 않다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확대했거나 확대가 계획된 주요 지출 분야에는 일자리 지원, 생활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현금성 복지 등이 있다.
일자리 예산은 사업 효과에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 예산을 늘리기보다는 사업의 효과를 높이는 정책 개선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생활형 SOC 투자에 대해서는 사업 효과나 실행 단계에서의 효율성에 대해 검증된 바 없다. 시범사업을 시행한 후 점진적으로 예산을 늘리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복지재정과 관련해 많은 선진국에서 현금성 복지사업을 축소하고 있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셋째, GDP 대비 40%대 중반이라는 국가채무 수준은 한국 여건에 비춰 보면 높아 보인다.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고령화,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국가재정을 더 건실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은 당시 국가재정이 건실했다는 사실에 크게 기인한다. 앞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경제위기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국민연금제도가 너무 늦게 도입돼 은퇴 후 생활이 준비돼 있지 않은 고령자들에게 국가재정을 통해서라도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통일 대비를 위해서도 재정을 건실하게 유지해야 한다.
넷째, 국가채무는 미래 세대 부담으로 현재 세대가 혜택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늘어난 국가채무는 언젠가는 상환하거나 탕감해야 한다. 상환하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의 조세 부담을 늘리거나 그들에게 제공될 정부 서비스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국가채무의 탕감은 정치와 경제가 붕괴했을 때나 가능한 것으로, 이는 미래 세대의 경제 상황이 최악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려서 투표권이 없어 자신을 정치적으로 대표할 수 없는 미래 세대 부담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