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어떤 영화…장르영화 틀에 대담한 상상력 가미

입력 2019-05-26 18:05
한국 빈부격차 다룬 블랙코미디


[ 유재혁 기자 ]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는 친구가 소개해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인다. 기우를 시작으로 딸 기정(박소담), 기택, 아내 충숙(장혜진)까지 박 사장 집으로 들어간다. 기택 가족의 엉성한 계략에 속은 박 사장 가족은 겉으로는 똑똑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바보 같다. 박 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는 영어를 섞어 쓰며 우아한 척하지만 실은 단순하고 순진하다. 기택네 가족이 완벽하게 기생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각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기택네 반지하 방과 박 사장네 부유한 저택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면서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담론을 블랙코미디로 펼쳐낸다.

봉 감독은 “칸에서 공식 상영한 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와서 모두 자국 이야기라고 했다”며 “기택네가 사는 반지하라는 공간은 미묘하다. 더 힘들어지면 지하로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는 동시에 방에 햇살이 드는 순간에는 지하이지만 지상이라고 믿고 싶어진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봉 감독은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했다. 장르영화의 익숙한 틀에 대담한 상상력으로 사회와 현실, 인간 본성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낸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봉 감독은 “한국 장르영화의 발전에서 중요한 건 할리우드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정치적인 것들, 인간적 고뇌, 한국인의 삶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편하게 섞여들면서 그런 요소가 없으면 장르영화가 낯설게 느껴지게 됐다”고 말했다.

출세작인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범인을 잡고 싶은 열정에 불타오르지만, 기술과 실력이 부족한 형사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연 ‘괴물’(2007년)에서는 한강변에서 괴물에 납치된 딸을 구출하기 위해 가족이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능한 공권력을 질타했다. 괴물을 낳은 요인으로 미군의 독극물이란 메시지도 곁들였다. 할리우드 진출작인 ‘설국열차’(2013년)에서는 꼬리칸 하층계급과 앞칸 지배계급을 뚜렷이 대비시켰다. 넷플릭스가 투자, 제작한 ‘옥자’(2017년)에서는 글로벌 식량기업의 탐욕을, ‘마더’(2009년)에서는 자식 때문에 광기에 빠진 모성의 이면을 각각 포착했다. 봉 감독은 이 같은 메시지에 적절한 유머를 섞고, 치밀한 장면 구성으로 관객들의 심리를 자유자재로 조종했다.

‘기생충’은 장르를 비틀어 사회 풍자의 날을 세우는 봉 감독의 솜씨가 절정에 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대중문화 매체 버라이어티는 “우리가 보던 전작보다, 웃음은 더 어두워졌고, 분노의 목소리는 더 사나워졌으며 울음은 더 절망적”이라고 평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