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커진 발행어음 시장, 깊어진 초대형IB의 고민

입력 2019-05-16 14:25
수정 2019-05-16 14:39

KB증권의 단기금융업 자격 획득, 신한금융투자의 대규모 증자로 초대형 투자은행(IB)간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발행어음 사업을 이미 하고 있거나, 곧 시작할 예정인 초대형 IB들의 사업전략에 대한 고민은 한층 깊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리 하락세로 목표 수익을 맞출 수 있는 투자처를 찾기 쉽지 않은데다, 기업 신용공여 한도 때문에 최적의 모험자본 공급 대상으로 꼽히는 중견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제약이 많아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5일 정례회의에서 KB증권의 단기금융업(발행어음)을 최종 승인했다. KB증권은 다음달 발행어음 사업을 시작해 올해 말까지 약 2조원어치 어음을 발행할 계획이다. 신한금융투자가 다음달 66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단기금융업 인가 요건인 자기자본 4조원대에 진입할 것을 고려하면 내년 발행어음 시장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경쟁자가 하나, 둘 늘면서 발행어음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초대형 IB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일단 역마진 위험 때문에 고객들에게 매력적인 금리를 제시하기 쉽지 않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75%로 올리면서 고객들의 ‘눈높이’는 높아진 반면 경기침체 전망에 확정금리형 상품들의 수익률은 하락하고 있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조차 기준금리를 밑도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발행어음 금리를 높일수록 투자처를 찾기는 더 어려워진다. 1년 만기 기준으로 ‘A’등급 회사채 평균금리(15일 기준 연 2.17%)는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의 발행어음 금리(연 2.3~3.0%)를 밑돌고 있다.

모험자본 육성 취지를 살려 중소·중견기업에 대거 자금을 공급하는데도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중소기업의 경우 한 번에 조달하는 금액이 적어 수백 건의 신용공여가 이뤄져야 의미 있는 운용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각 증권사의 까다로운 기업심사 절차를 감안하면 단번에 투자할 중소기업 수를 늘리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중견기업은 그나마 적절한 투자대상으로 꼽히지만 신용공여 한도가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증권사의 기업 신용공여 한도는 자기자본의 100%에서 200%로 늘어났다. 그러나 증가한 한도는 모두 중소기업을 대상으로만 쓸 수 있다.

초대형 IB들이 기업 신용공여의 상당량을 대기업으로 채워온 것을 고려하면 중견기업을 상대로 투자할 수 있는 한도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의 평균 자기자본 대비 기업 신용공여금액 비율은 2016년 말 62%에서 지난해 말 107%까지 상승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자칫하면 초대형 IB들의 투자에서 중견기업이 배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