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백수 400만명 시대의 단상…'명품'이 '짝퉁'되는 안타까운 세상

입력 2019-04-25 16:45
경영학 카페

출구조차 안보이는 고용시장
남이 쓴 자기소개서를 찾아서
내 것으로 둔갑시키는 청년들


오랜만에 한 멘티로부터 전화가 왔다.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니 와서 축하해 달라고 한다. 이 친구 삶의 방식이 참 젊은이답다. 군 복무 후 삼수까지 한 후에야 가족의 간청에 못 이겨 대학에 간 친구였다. 한국을 혼돈에 빠뜨렸던 ‘스펙 전쟁’의 피해자였고, 본인 주변머리로는 국내 대기업은 힘들 것이라는 ‘정확한 판단’을 했기에 장기간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는 등 이단아 같은 삶을 살았다. 몇 해 전 두바이로 건너가 인턴직을 거쳐 정규직이 되고 현지의 다른 글로벌기업에 스카우트됐다. 한국과 두바이를 오가다가 만난 항공사 승무원과 결혼에 골인한 이 청년은 한 가지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져준다. “나는 나다!”라고.

사방을 둘러봐도 모든 길이 다 막혀 있다. 비공식적인 통계로 ‘청년 백수 400만 명 시대’가 열렸다. 고용 없는 저성장이 장기 불황으로 이어져 뚜렷한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고용 창출 노력과 취업 프로그램을 만드는 대학들의 수고도 ‘응급처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살벌한 경쟁률을 뚫고 취업한 청년들은 1~2년이면 줄줄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다. 오죽하면 최근 20·30세대들의 새해 목표로 ‘퇴사’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퇴사가 희망이다’라는 슬로건까지 회자하고 있을까.

‘헬조선’으로까지 치부되는 이런 모순된 구조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기성세대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청년들도 이제 감당해줘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의 ‘컬러’를 빨리 찾으라는 것이다. 더는 입시학원 스타일의 족집게 취업 교육을 탐닉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찾아내야만 한다. 행복한 평생의 업(業)을 얻을 수 있는 첫걸음이다.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했던 여러 인·적성 검사는 참고 자료는 되겠지만 자신의 정체성 자체가 되기는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잘 쓰여진 누군가의 자기소개서를 찾아서 그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둔갑시키는 청년들이 넘쳐나고 있다. 자신의 본질과 콘텐츠가 없기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면 남다른 여정을 떠날 플랫폼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쉽지가 않다. 가족들과 본인 스스로가 용기 있게 다양성을 인정하고 남다른 길을 가는 데 주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유턴’할 것인가. 유턴은 중·장년층 조기 퇴출이라는 사회현상과 맞물려 훗날 부메랑이 돼 우리에게 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

두바이의 그 멘티가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저는 커리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 곳인지 몰랐습니다.” 물론 모두가 이 친구같이 될 수는 없다. 어쩌면 누구에게는 대기업보다 외국기업이, 중소기업이, 스타트업이, 해외 취업이, 그리고 창업이 분명히 더 맞을 수 있다.

평생 커리어 관점의 ‘인생 총재산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넘버 원’(최고)이 되기보다는 ‘온리 원’(유일한 존재)이 먼저 돼 보자. 태생이 명품인데 굳이 애쓰며 ‘짝퉁’ 같은 여정을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가장 나 다운 길을 갈 때 우리는 단순해질 수 있다. 단순해지면 어리석지 않게 되고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한준기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