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최종안 나온 표준감사시간
감사보수 급증에 대한 우려는 기우
투자자 위한 회계에 지혜 모아야
정도진 < 중앙대 교수·회계정책포럼 집행위원 >
요즘처럼 회계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킨 때는 없었던 것 같다. 회계에 관심이 없던 이들조차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에 대해 한두 마디씩 보태곤 한다. 최근 회계업계의 새로운 화두는 단연 ‘표준감사시간’을 꼽을 수 있다. 표준감사시간이란 기업이 만든 재무제표를 외부감사인인 공인회계사가 감사하는 데 투입해야 할 표준시간을 의미한다.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시간이 과도하게 부족해 신뢰성 있는 재무정보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반영된 새로운 제도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지난달 24일 상장 여부, 기업 규모 등에 따라 11개 그룹별로 적정 감사시간을 제시한 표준감사시간 최종안을 발표했다. 감사시간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30%(자산 2조원 이상은 50%) 증가율 상한선을 도입하는 등 당초 논의안보다 완화된 안으로 확정됐다.
회계업계에서는 표준감사시간이 그동안 왜곡된 회계감사시장을 바로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실제로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발효,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등으로 가격 경쟁 위주의 회계감사 시장이 품질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는 신호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기업들은 표준감사시간에 대한 반감과 우려가 높다.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발표한 표준감사시간 제도에 대해 일부 기업단체에서는 소송을 제기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기업이 표준감사시간에 대해 이토록 부정적인 근본 이유는 표준감사시간 도입으로 감사보수가 크게 증가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표준감사시간 도입을 빌미로 갑자기 전년보다 수배 이상의 과도한 감사보수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감사시장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아직 감사시간의 증가가 반드시 감사보수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중소회계법인의 경우 표준감사시간으로 인해 감사시간이 증가하더라도, 기존 고객 기업과의 수년 동안의 관계 때문에 일방적으로 감사보수를 높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계업계와 기업 간에 표준감사시간을 놓고 논쟁을 계속하는 것은 그 도입의 목적을 망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표준감사시간을 통해 재무제표의 품질을 높이려는 것은 기업 외부의 투자자와 이해관계자를 위한 것이지 누구의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한 게 아니다. 따라서 회계업계는 감사시간 증가를 통해 어떻게 재무제표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 충분히 설득하고, 단순히 감사보수의 인상 수단으로 표준감사시간을 활용하지 않도록 스스로 제동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표준감사시간이 법에 담겼다는 것은 이 제도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하다. 그동안 감사시간이 부족해 기업의 재무제표 품질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방향성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제도 자체를 뒤흔드는 불필요한 논쟁은 오히려 회계업계와 기업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표준감사시간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회계업계와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할지 지혜를 모으는 게 바람직하다. 표준감사시간 도입은 공인회계사나 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고, 투자자와 이해관계자를 위한 것임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