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스마트
북한 투자의 시대
[ 윤정현 기자 ]
지난 12일 코스닥시장에서 아난티가 전날보다 6.18% 급등했다. 6일과 11일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이 회사 주식 2000주를 장내 매수했다는 전날 공시 덕분이었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북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될 조짐에도 시장의 관심은 뜨거웠다. 아난티는 금강산에 골프장을 보유한 국내 리조트 업체다. 로저스는 지난해 말 3년 임기로 아난티의 사외이사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이미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고 했을 만큼 일찌감치 북한을 유망 투자처로 지목해왔다.
로저스가 쓴 《스트리트 스마트》는 2014년 출간한 《세계경제의 메가트렌드에 주목하라》의 개정판이다. 제목과 표지가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는데도 이 책이 주목받는 것은 최근 상황을 반영한 로저스의 인터뷰 때문이다. 책 첫머리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한반도에 엄청난 기회들이 오고 있다”며 “앞으로 10년 또는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십 년 동안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매우 저렴하다”는 게 북한에 대한 그의 평가다. 북한은 싸고 훈련받은 노동력에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추고 있으며 거대 자본과 경영 기술은 남한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1942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난 로저스는 예일대를 졸업한 뒤 1969년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설립했다. 1971년부터 1980년까지 S&P500지수가 47% 상승할 동안 퀀텀펀드는 420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37세가 되던 해 ‘퀀텀펀드로 자유를 샀다’며 은퇴를 선언한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를 떠났다.
‘해는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제목의 15장에서는 2007년 나흘간 북한을 방문했던 경험도 언급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만큼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시 그는 “나는 북한이 곧 개방할 것으로 본다”며 “그때가 오면 북한은 세계무대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가 얘기한 ‘곧’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그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전 모든 주식을 현금화했다. 중국의 성장을 예견하고 2005년 상하이에서 여름을 보낸 뒤엔 2007년부터 싱가포르에서 정주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의 장막’이나 ‘화폐의 위기’에 대한 경고, ‘개방적 사고’ ‘창조적 파괴’의 중요성을 서술한 부분에서도 ‘투자의 천재’로 불리는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스트리트 스마트》가 투자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정민규 변호사가 쓴 《북한 투자의 시대》는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한다. 북한법률 전문 변호사인 저자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면서 대북사업에 관심을 뒀다. 이후 증권사에 재직하면서 신흥시장 투자 경험을 쌓았다.
책은 정부 주도 남북한 경제협력 사업의 첫 관문이 토목건설과 인프라 구축, 지하자원 개발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자원 매장량은 풍부하지만 인프라가 열악하고 전력공급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철도와 도로 등 운송 시설이 낙후돼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어서다.
저자는 “정부와 자원 공기업, 포스코 등 민간 대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대북자원개발단을 구성해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대기업은 토목건설과 물류, 유통, 호텔관광 사업, 중소기업은 섬유와 식품, 건설자재와 목재공업을 노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국, 러시아 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하거나 유엔 등 국제기구와 공동사업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은 실전에 필요한 전략이다.
두 책 모두의 공통된 전제는 북한의 개혁 개방이다. 현실에서 협상은 중단됐고 제재는 지속되고 있다. 당장의 투자보다 언젠가 올 미래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로저스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역사를 돌아보면 변환기는 주의 깊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인생에서 성공은 결국 변화를 예상하는 능력에 좌우된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