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공공노조 3~5년 임금인상 자제해야"

입력 2019-03-11 17:37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제안

"고용 안정성·유연성 높이자"
실업급여 9조→26조로 확대
덴마크식 고용안전망 구축



[ 김형호 기자 ]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는 11일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조가 3년 또는 5년간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결단을 내려 달라”고 촉구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사회적 대타협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실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업급여 확대 등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노동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해 대기업 정규직 평균임금은 월 400만원인 반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151만원에 그쳤다”며 “대통령과 정부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노동시장 양극화의 해법은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를 위해 현재 9조원인 실업급여를 26조원으로 확대하는 등 2030년까지 덴마크식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최대 2년간 실업급여를 제공하고 전직훈련을 지원하는 덴마크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해 경기 변동이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생하는 인력 구조조정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홍 원내대표가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를 사회적 화두로 제시하자 정치권은 이전보다 전향적 자세라고 평가했다. 다만 기득권 노조의 벽을 뚫고 이 같은 사회적 논의가 현실화될지를 두고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사회적 대타협은 이해의 한 축이 반대하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어서다. 이날 탄력근로제 확대 의결을 위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체회의가 노동계 불참으로 또다시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40분간 연설 중 ‘소득주도성장’ 표현은 단 한 차례도 쓰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 브랜드인 소득주도성장 자리를 ‘포용성장’과 ‘제조업 르네상스’가 대신했다. 그는 “양극화의 근본적인 해법인 ‘포용국가’는 제조업 르네상스와 벤처혁신기업 육성을 통한 새로운 성장 엔진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제조업이 수출과 일자리 창출의 핵심이라는 인식도 나타냈다. 그는 “2030년까지 매년 1조원씩 소재 및 부품산업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 전지 투자도 늘려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소득양극화와 실업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 대해서는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 홍 원내대표는 “포용적 성장은 결코 최저임금 인상이 전부가 아니다”면서도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경제 전면을 세밀히 살피지 못한 점도 있었다”고 보완을 약속했다.

홍 원내대표는 외교안보와 관련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우리의 촉진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여야의 초당적인 협력을 호소했다. 이어 “보수진영도 이제 평화의 문을 함께 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북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동향은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북한의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촉구했다.

홍 원내대표는 ‘5·18 민주화운동 폄훼’와 ‘탄핵’에 대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권의 최근 행보를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그는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야 할 국회의원들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 안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날조하고 있고 ‘태블릿PC가 조작됐다’는 등 가짜뉴스를 통해 1700만 국민이 이뤄낸 촛불혁명을 부정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야당은 홍 원내대표 연설을 두고 “경제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 제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연설에 공감할 부분도 있지만,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한 경제의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여전히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한 부분이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의 가장 큰 문제점인 북한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점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이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꼬집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