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 금융중심지, 새롭게 시작해야

입력 2019-03-10 17:39
금융중심지 지정 10년 맞은 부산
경쟁력은 쿠알라룸푸르에도 뒤져
'규제 샌드박스' 등 중점 지원 절실

강병중 < 前 부산상공회의소 회장·넥센타이어 회장 >


최근 제3 금융중심지 후보에 올랐던 한 혁신도시에 금융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필자로서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10년이나 된 부산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도 안타깝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당선인 시절 “문현금융단지가 외로운 섬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정부는 1971년부터 국토종합발전계획에 부산을 국제무역 및 금융도시로 명시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부산을 방문했을 때 “국제금융도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을 때 신설되는 선물거래소의 부산 유치 운동을 전개했다. 주무부처 장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9년 부산에 선물거래소가 설립됐고, 세금 감면 등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에 힘입어 성장했다.

2005년 증권거래소와 코스닥거래소가 합병할 때 선물거래소도 통합되면서 본사를 부산에 둔 한국거래소가 출범했다. 2009년 부산 문현지구는 해양 및 파생상품을 위주로 하는 금융중심지로 지정됐다. 지난 10년간 문현지구에는 지상 63층 초대형 빌딩인 부산국제금융센터가 세워졌다. 지금은 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29개 기관에 38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혔다. 부산의 국제금융센터지수가 2014년 27위에서 지난해 44위까지 추락했다. 아시아 권역에서 홍콩(3위) 싱가포르(4위) 상하이(5위)와는 비교할 수 없고, 오사카(22위) 쿠알라룸푸르(40위)에도 뒤졌다. 외국계 금융회사는 전혀 유치하지 못했다. 부산에 있던 선물회사 지점들도 서울로 옮겨갔다. 부산의 금융산업 비중은 2011년 7.4%에서 2016년 6.5%로 감소했다.

지난달 15일 부산시는 금융중심지 지정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국제금융센터 순위를 매기는 지엔그룹의 마크 옌들 대표 등 전문가들이 참여한 자리였다. 옌들 대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 인력 확보, 인프라, 평판 등을 언급하며 핀테크, 해양금융 등 특화분야 육성을 강조했다. 황형준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 대표파트너는 “싱가포르, 상하이는 정부의 체계적 육성정책과 함께 선진화, 다양화, 표준화가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부산시는 이 자리에서 남북경협과 신북방정책 추세에 따라 북한개발은행을 설립하고 금융중심지 활성화를 위해 부산국제금융진흥원을 세우는 방안을 제시했다.

홍콩에 진출한 한국 금융기관 실무자들과 최광해 총영사관 재경관이 홍콩의 국제금융도시 성장전략을 담은 책 두 권을 펴낸 적이 있다. ‘시장이 주도하고 정부는 따라간다’는 말처럼 홍콩은 시장경제원칙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시장 진입과 철수에도 차별이 없었다. 한국 금융감독원 인력의 4분의 1로 10배에 가까운 은행을 감독할 정도로 안전성이 우수했다. 황 대표는 이날 “부산이 확고한 전략을 10년 전 고민했다면 좀 더 쉬웠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한국의 금융 인재들이 이미 10년 전 홍콩에서 배웠던 성장전략은 활용되지 못했고 부산은 허송세월한 셈이다.

정부와 부산시는 규제 혁파와 세제 지원 등 적극적인 금융중심지 육성정책을 펼쳐야 한다. ‘금융 샌드박스’를 제공해 새로운 금융 기법이 세계시장과 경쟁하도록 하고, 금융기관들은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창의와 혁신으로 변화할 때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듯이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