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일 하노이 美·北 정상회담
의미 있는 성과 내기 어렵겠지만
'동결 후 폐기'로 北核 인정할 수도"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
세계의 이목이 27~28일 이틀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회담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회담이 끝나는 28일 모든 일정을 비웠다고 한다. 평화를 희구하는 우리 국민도 기대와 우려 속에 이 회담의 추이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서 무언가 획기적인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획기적 진전을 제한하는 요인들이 촉진 요인을 압도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제협상은 상대방도 구슬려야 하지만 국내의 지지 및 반대 세력도 신경써야 하는 양면게임(two-level game)이다. 미·북 협상은 국제사회라는 제3의 측면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군부를 달래기 위해 뭔가를 얻어내야 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외교적 성과를 거둬야 한다. 아울러 트럼프와 김정은 둘 다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어한다. 이처럼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거창하게 내세울 결과가 절실하다. 하지만 서로 상대에게 양보는 최소한으로 하고 대가는 최대한으로 받아내려 하기 때문에 실제로 의미있는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의 회담은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할 내용은 없으면서 말로 하는 공약(verbal commitment)만 요란할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회담의 결과를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내용은 작고, 말만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이번이 마지막 정상회담이 아니라고 말한 것도 미리 사람들의 기대치를 낮추겠다는 계산이 없지 않았을 터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후 지금까지 비핵화와 관련해 한결같이 단계적·동시적 접근을 내세워왔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내놓은 적도 없고 그마저 번복하기 일쑤였지만 북한이 영변 핵시설 해체를 약속하자 미국은 ‘동결 후 단계적 비핵화’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이 여러 형태로 요구한 ‘상응조치’는 크게 세 가지다. 경제적으로 인도적 지원, 북한 은행의 국제거래 제한 완화, 북한 수출·수입 제재 완화 등을 원한다. 정치적 상응조치로는 북한 여행 금지 해제, 김씨 일가와 고위 인사들에 대한 제재 해제,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철회 등을 거론해왔다. 안보 측면으로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연락사무소 개설과 외교관계 수립 등을 언급해왔다.
경제적, 정치적 상응조치는 대개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사항이기 때문에 트럼프 혼자서 마음대로 합의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그렇다면 미국의 양보는 결국 안보 측면의 상응조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연락사무소 개설은 이미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어쩌면 종전선언이나 평화선언 같은 게 이뤄질 가능성도 작지 않아 보인다. 경제적 상응조치는 제재 완화보다는 십중팔구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제안한 남북경협 카드를 이용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안보 상황이다.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이 거듭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북한의 핵 위협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는가? 또 북한의 핵무기가 한 개라도 줄어들었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로지 북한이 같은 민족에게 핵무기를 사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안보 빗장을 거의 풀어버렸다. 북한의 6·25 남침을 상기하면 이런 낭만적 민족주의는 실로 근거가 없는데도 말이다.
미국과 북한이 동결 후 단계적 비핵화에 합의하는 것은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중한 지위를 북한이 쉬 포기할까. 성급한 평화의 기대 속에 남북경협에 수십조원 이상을 사용한 상태에서 북한이 비핵화 입장을 과거처럼 번복하면 제네바 합의 파기 이후의 상황이 한층 끔찍한 형태로 재연될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돌발사태에 대비하고 있을까.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첫 번째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의 치세가 비극이었다면 두 번째 보나파르트(조카인 루이)의 치세는 광대극이었다고 평했다. 미·북 정상회담은 첫 번째가 광대극이었고 두 번째는 비극의 서막이 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