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값 10개월 만에 최고…침체 불안 속 中·러 사재기

입력 2019-02-20 17:27
美·中 무역협상 낙관론에
뉴욕증시 상승세 타는데도
'안전자산' 金 투자자 몰려

美·EU 긴축 철회 움직임
글로벌 성장 둔화 불안감 커져
강달러 주춤·美국채 인기 시들


[ 김현석 기자 ] ‘안전 자산’의 대명사로 꼽히는 금값이 10개월 내 최고치로 치솟았다. 글로벌 경기가 빠르게 둔화할 것으로 점치는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과 갈등을 빚어온 중국 러시아 등의 중앙은행이 미 달러화 대신 금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1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물 금 선물가격은 전날보다 1.7% 상승한 1340.10달러로 마감했다. 하루 상승폭은 작년 11월 1일 이후 가장 컸고, 종가는 작년 4월 19일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작년 11월 초만 해도 1200달러대 초반이었던 금값은 올 들어 4.8% 올랐다. 4월물 금 가격은 이날 한때 1349달러를 넘기도 했다.

금은 경기 침체기에 주식 등 위험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 각광받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낙관론 속에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부 투자자는 글로벌 성장 둔화에 대비해 금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뉴욕의 증권사 번스타인은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투자 매력은 갈수록 부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일본, 유럽연합(EU) 등도 다시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회귀할 움직임을 보이는 금값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19일 엔화가 물가와 경제를 흔들 만큼 강세를 보일 경우 추가 금융 완화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금리 인상 기대가 줄면서 미 국채 등 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에 대한 투자 매력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중 무역협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지정학적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금 투자가 늘어난 배경이다. 금융서비스 회사인 인터내셔널FC스톤의 에드워드 메이어 컨설턴트는 “미·중 무역협상에서 약간 진전이 있었지만 투자자들은 양국이 무엇에 합의했는지 좀 더 많은 증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달러 강세가 최근 주춤해진 것도 금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달러로 거래되는 상품은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 자산을 줄이고 금 보유를 늘리는 국가가 증가하면서 수급도 빡빡하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은행의 금 수요는 651.5t으로 2017년 374.8t보다 74% 급증했다. 이는 1967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다양한 이유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 러시아, 터키 등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처분하고 그 돈으로 금을 사들이고 있어서다. 러시아는 지난해 보유하던 대부분의 미 국채를 팔고 금 274.3t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금의 생산 증가율은 수년째 연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 6년간 금 가격이 온스당 1200~1400달러 수준에서 유지되며 금광에 대한 투자가 많지 않았던 탓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